'다국적기업'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12.31 내 종교 내 경전 - 세이노 5 -
  2. 2010.12.31 내 종교 내 경전 - 세이노 9 - 2


좋은 의사를 만나는 법  
몸에 병이 생기게 되면 누구나 의사(혹은 한의사)를 찾게 된다. 이때 누구나 실력 있는 의사, 좋은 의사, 허준 같은 명의를 만나기를 원할 것이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좋은 의사를 고르려면 먼저 의사들의 세계를 알아야 할 것이다. 
의대에는 어떤 학생들이 가게 되는가  병들고 불쌍한 가난한 환자들을 치료하려는 박애심 투철한 학생들인가  천만에. 전과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린 학생들이 간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학생들이 많이 지원하는 것도 특징이다(얌전한 모범생들이 많다는 말이다). 그들이 의대를 지망하는 이유는 대부분 의사라는 직업이 돈도 잘 버는 직업일 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부러워 하고 사회적으로도 신분이 비교적 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수행하고자 의대에 가거나 혹은 제2의 슈바이쳐가 되고자 하는 학생은 정말 정말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비난하여서는 결코 안된다. 의사 역시 사람들이 먹고 사는 수단으로 택하는 수많은 직업들 중 하나를 택한 생활인이기 때문이다.) 
자, 그런 학생들이 의사 면허증을 받고자 치루는 의사고시는 어떤 내용일까  모두 이론이다. 의대 졸업반 학생들은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예상문제 공략을 꾀하기도 한다. 실습은 대학 시절에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의사고시에 합격한 뒤 거치게 되는 인턴,레지던트 기간 동안에 이루어 지게 된다. 이때 돈은 얼마나 받게 될까. 의학 공부를 한지 10년째에 해당되는 전공의 4년차일 경우 연봉은 2천만원 수준이며 야간 당직 수당은 2만원선이다. 수련의 기간은 육체적으로 너무나도 힘든 과정이기에 제대로 책을 볼 시간적 여유도 많지 않다. 
수련의 과정을 마친 응급실 야간 당직의사의 월급은 많아야 3~4백만원선이다. 인기 진료 과목이라고 할 수 있는 안과, 성형외과, 피부과, 비뇨기과, 이비인후과, 가정의학과 등에서 전문의 자격을 딴30대 초,중반의 의사는 봉급의사(봉직의)로 일할 경우  아주 아주 잘 풀리면 (재단과 모종의 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 연봉 1억원도 받지만 실상은 그 이하를 받는 경우가 더 많다. 한편 이러한 진료과목들의 특징은 노동 강도가 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24시간 대기할 필요도 없고 1주일에 하루 정도는 눈치 안보고 놀 수도 있다. 그러나 월급을 주어야 하는 운영자가 볼 때 나이가 든 의사는 젊은 의사 보다 부담스럽기 때문에 오래 있을 수록 갈등이 발생할 요지가 크다. 하지만 이런 진료과목들은 다른 과목에 비하여 개업이 손 쉽다. 때문에 의대 졸업자들은 너도나도 인기 진료과목들의 수련의 과정을 지원하게 되지만 자리는 한정되어 있기에 경쟁은 치열하다( 때문에 그런 인턴 자리를 얻으려면 실력 이외의 여러 가지 지저분한 것들을 동원하여야 될 수도 있다). 
인기 진료과목의 전문의들의 인건비는 다른 과목들에 비해 높게 형성되게 되는데 보수가 넉넉치 않으면 개원을 하고자 병원을 그만두어 버리기 때문이다. 특히 은행 대출 금리가 쌀 때는 누구나 개업의 유혹을 느끼게 되기에 인건비가 상승한다. 반면에 외과 같은 경우는 노동 강도가 심하고 지원자도 많지 않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른다면 그 어느 과목 보다도 더 많은 보수를 받고 있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개인 독립하기가 어려운 과목이기 때문이며 50대 유명 외과과장의 연봉은 최대 1~2억 수준이다. (독립한 외과 의사들 절반 이상은 수술이 비교적 손쉬운 항문과 직장을 진료과목으로 내세운다. ) 
의사가 개원을 하는 데는 상당한 돈이 필요하다. 진료과목에 따라서는 의료 장비의 가격이 만만치 않고 입지 조건이 좋은 곳들은 임대료가 상당할 뿐 아니라 선배 의사들이 포진하고 있기 때문에 뚫고 들어가기도 쉽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개원시 필요한 인테리어나 부동산 구입 혹은 임대에 필요한 지식도 약하다. 더군다나 의사라고 하는 직업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품위유지라는 명목으로 소비생활에 들어가는 비용 역시 적지 않다. 반면에 의사가 되기 위하여 경제적 시간적 정신적 투자를 남들보다 더 많이 하였다고 생각하기에 기대 수익은 높다. 그러다 보니 어떤 의사들은 수련의 단계에서 이미 상당한 빚을 지는 경우도 있게 되고 연봉이 많아도 여전히 빚에 시달리기도 하며 개원을 하면서 엄청난 빚을 지기도 한다. 결국 그런 의사들은 그 빚을 한시라도 빨리 갚으려고 하다 보니 자연히 환자들로부터 돈이 많이 나오도록 하는 방법을 추구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만다. 
그 결과 3일치 약을 한번에 주어도 될 것을 진료비 수입을 늘리고자 매일 같이 오라고 하게 되기도 하고(그래서 나는  죄송합니다만 출장을 가야 하는데 1주일치 약을 처방해 주시면 안될까요  하고 말한다)  하지 않아도 될 것을 예방적 차원에서 권유하는  별의별 것들이 나올 수도 있게 된다. 결국 우리나라 제왕절개 수술 비율은 전세계 1위에 오르게 되고, 서울 강남 어느 산부인과의 응급차는 싸이렌 소리가  씨쌕 씨쌕 울린다고 소문이 나게 되고(제왕절개수술을 씨저리안 쌕션, Caesarean section 이라고 하는데 의료계에서는 그 첫 글자만 따서 씨색이라고 흔히 부른다), 제약회사로부터 뒷돈을 받거나 건강보험공단에 거짓 청구서를 보내거나 의료장비를 리스회사를 끼고 구입한 뒤 다시 팔아먹는 의사들 까지 생기게 된다. (그러나 거짓 청구서를 보내는 의사들 중에는 아주 일부이기는 하지만 선한 사마리아인들도 있다. 보험적용일수가 초과되는 가난한 환자를 위해 그 가족들 명의로 분산시켜 서류를 꾸며주었다가 나중에 비리 의사로 낙인 찍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들을  의사 선생님 으로 무조건 믿고 따르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게다가 의사들은 자기들이 설사 잘못을 하여 환자가 죽더라도  고의가 아니기 때문에 민형사상 어떠한 손해배상도 요구하지 않겠다 는 각서를 수술 전에 요구한다.(불량품을 주더라도 고의는 아니고 최선을 다했으므로 불만 갖지 말고 돈은 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의료 소비자 입장에서 좋은  의사 선생님 을 만나려면 무엇을 고려하여야 하는가. 
우선은 현행 의료제도의 문제를 생각하여야 한다. 의료법인은 영리법인이 될 수 없다는 웃기는 법 때문에 자본가들은 병원을 세우려고 하지 않는다. 결국 종합병원의 수는 늘지 않으나 동네 의원이나 종합 병원의 의료수가는 동일하고, 능력 있는 의사가 진찰하는 비용이나 초보 의사가 진찰하는 비용이나 보험 청구액에 있어 큰 차이가 없다 보니 사람들은 유명 종합 병원으로 몰린다. 그리고 종합병원에서 의사의 수는 한정되어 있는데 몰려드는 환자는 많다 보니 1시간 이상 기다리다가 3분 진료를 받는 것이 보편화되어 버렸다. 모든 국민은 동일한 의료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사회주의적 복지 정책이 결국은 동일한 3분 진료라는 형편없는 결과를 가져 온 것이다. 때문에 중병이 아니라면 종합병원 보다는 개인의원 혹은 개인병원을 찾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그렇다면 개업의를 제대로 고르려면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첫째, 무엇보다도 먼저 건물 자체를 보아야 한다. 자체 건물이건 임대 건물이건 간에 나는 시설이 화려한 곳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실내에 수입 대리석이 붙어 있는 병원들은 건축비를 적정 이상으로 사용하였으면서도 적자가 난다고 징징 우는 곳들이거나 건축비를 빌미로 뭔가 구린내 나는 짓거리를 한 곳일 수도 있다(나는 특히 대학병원들 중 건축을 화려하게 한 곳들은 일단 구린 냄새가 나는 곳으로 의심한다). 
내 아이들이 태어날 때 내가 택한 개인 산부인과는 처가집에서 소개한 곳이었는데 아주 마음에 들었다. 십칠팔년전의 이야기 이지만 건물은 낡았고 입원실은 3류 여인숙 정도 밖에는 안되며 바닥 난방이 연탄을 피우는 새마을 온돌 시스템이었다. 병원 시설이 호화롭다면 당연히 의사는 병원을 꾸미는데 돈을 쳐 발랐다는 뜻이고(대부분 인테리어 비용에서 와장창 바가지를 쓴다) 그 돈을 메꾸기 위해 환자의 건강과 재정 상태 보다는 자기 호주머니 사정을 진료에 더 반영할 것이다. 화려한 병원일수록 수술을 권한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내가 택한 산부인과 의사는 자연분만을 권장하는 분이었다. 
오래 전 목 디스크(추간판돌출증)로 내가 고생을 하였을 때의 일이다. 당시 그 분야에서 권위자라고 하는 어느 병원의 원장이 여러 중앙지에 글을 쓰고 자주 소개되었기에 일단은 그 병원을 찾아갔다. 명심해라. 어떤 의사의 글이 언론에 자주 나온다는 것은 그 병원 측에서 보도자료를 돌리거나 기자들과의 친분을 이런 저런 방법으로 유지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을. 어쨌든 그 병원에서는 즉시 수술을 권하였다. 하지만 그 병원의 건물 가격을 얼추 계산하여 보고 고용된 의사들의 수를 반영시켜보니 그런 건물을 지으려면 수술을 엄청나게 해야만 했다. 나는 그 병원의 권유를 무시하였다. 다른 병원의 정형외과 의사들을 만나보니 그 병원은 완전 상업적(장사속이라는 말이다) 수술로 알려져 있는 곳이었다. 결국 나는 국내에 나와 있는 관련 서적 4권을 구입하여 읽어 보고 물리치료에 대해 알기 위하여 물리치료학 교과서도 구입하였다(그리고 의사들이 디스크에 대해 이론적으로 배우는 내용이 몇 페이지도 안된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TENS 라고 하는 저주파 치료기와 디스크의 압력을 감소시켜주는 목 보호대, 목을 당겨주는 기구가 부착된 침대 등을 종로 5가 의료기 상점에서 구입하여 자가 치료를 꾸준히 하였다. 그리고 병을 고쳤다.(질병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권하는 말: 그 병과 친구가 되어라. 그 병에 대하여 속속들이 알아내라.) 
둘째로 고려하여야 할 것은 의사 개인의 소비 취향이다. 의사가 차고 있는 시계나 장신구가 호화롭다면 그는 돈이 많이 필요한 사람이다. 나는 그런 의사는 피한다. 그런 의사들은 여러 가지를 설명하면서 이른 바 예방적 차원에서의 갖가지 방법들 을 권유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성균관대학교 정문 앞에 민 내과라고 있었다. 그 분은 웬만하면 약을 주지도 않는 분이었다. 진찰실에 있던 의자는 수 십년은 되어 보였고 의료 기기들 역시 골동품 수준에 가까웠다. 나는 이런 의사를 생활인으로서의 의사가 아닌 의료인으로서의 의사로 존경한다. 
셋째로 의사의 나이를 보아야 한다. 젊은 의사를 나는 별로 신임하지 않는다. 의사는 기본적으로 임상 경험이 많아야 하는데 당신이 만난 의사는 수련 기간 동안에 당신과 똑 같은 질병을 가진 환자를 한번도 경험하여 보지 못했던 의사일 수도 있다. 요즘 웬만한 안과들에서 너도 나도 라식이나 라섹 수술 전문임을 표방하는 것을 볼 때 도대체 나는 레이져 수술기기를 누구를 상대로 얼마나 실습하였기에 그렇게 자신있게들 덤벼 드는지가 궁금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나이가 많다면 새 지식을 받아들이는데 있어 한계가 있음도 고려하라. 적지 않은 의사들이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라. 
넷째, 의사 앞에서는 말을 많이 하고 많이 물어 보아라. 의사들 중에는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학교 모범생 타입이 꽤 많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라. 불친절하게 비쳐지는 의사들 중에는 정말 실력은 있지만 성격상의 이유로 인해 사회적으로 다정다감한 행동을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권위적으로 비쳐지기도 하지만 외향적인 면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인상을 줄 뿐이다. 그런 의사들에게는 환자가 먼저 말을 많이 걸고 많이 물어 보아야 한다. 즉 의사가 답변을 하면서 말을 많이 하도록 유도하라는 말이다. 
다섯째, 자기만의 비법이 있다는 말을 하는 의사는 양의이건 한의이건 모두 절반은 도둑이라고 생각하라. 어느 한 의사만 알고 있는 비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예전에 용하다고 알려진 어느 한의사가 있었는데 환자들이 바글바글 댔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웬만한 한약재 마다 스테로이드 제를 섞어 주었기에 반짝 치료 효과만 있었고 부작용이 상당하였다. 
여섯째, 중병일 경우 절대 절대 어느 한 의사의 말만 듣지는 말아라. 그 의사가 유명 대학병원 고참 의사라고 할지라도 그렇다. 반드시 두 군데 이상의 비슷한 임상 경험을 가진 다른 의사들의 의견을 들어라. 어떤 병원에서는 당장 수술을 하여야 한다고 엄포를 놓는 병이 다른 병원에서는 전혀 다른 진단 결과가 나온 예를 나는 여러 번 보았다. 반대로'특별히 이상한 곳이 없다'는 소견을 받은 사람이 나중에 갑자기 죽어버리는 경우 조차 하나 둘이 아니지 않는가. 물론 의사들은 환자들이 의사 쇼핑을 다니는 것을 싫어하지만 그래도 다른 의사의 말도 들어 보아라. 전혀 다른 진단을 받게 될 가능성도 있으니까 말이다. 
일곱째, 첨단 검사 시설이니 뭐니 하는 것도 좋지만 한의사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도 시도하라. 둘째 딸아이가 초등학교 학생시절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하기 시작했다. 잠을 자다가도 머리가 아프다고 울면서 호소하곤 했다. 그리고 한달 동안 종합병원들을 다니면서 갖가지 검사를 지겹도록 다 받았다. 결론은 육체적으로는 이상이 없으니 소아정신과로 가라는 것. 그래서 혹시나 해서 동대문 근처에 있는 한의원을 찾아갔다(평소에 다니던 곳인데 건물이 거의 쓰러져 가는 수준이다). 거기서 한의사가 딸아이를 이리저리 10분 정도 만져보고 내린 진단 결과는 칼슘 부족. 딸 아이는 얼마 후 웃음을 찾았다. 그러나 양의가 고칠 수 있는 병을 한의에게만 매달리는 바람에 병이 커진 경우도 나는 많이 보았다. 양의와 한의의 세계가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고 스스로 균형을 잡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여덟째, 자격증을 구분할 줄 알아라. 전문의는 말 그대로 어느 한 진료 과목을 전공으로 한 사람이며 별도의 자격증을 획득한 사람이다. 일반의는 일반적 진료과목을 골고루 다 진료하는 의사이지만 일반의도 성형외과를 진료과목으로 내 걸 수 있다. 그러다보니 성형외과 전문의가 수술하는 성형외과도 있고 일반의가 수술하는 성형외과도 있게 된다. 그것을 구분할 줄 알아라. 그리고 의학 박사들은 수없이 많은 질병들 중 어느 특정한 병 하나를 연구해서 (어떤 이는  연구한 척 해서 ) 학위를 받은 것이다. 그 병이 아닌 다른 병들에 대해서는 전혀 박사가 아니라는 말인데도 사람들은 의학박사를 무슨 신통방통 허준으로 믿는다. 
아홉째,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들도 있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 나이롱 환자들과 다정하게 손잡고 보험회사를 등쳐 먹으며 병원을 운영하는 곳들이 있다. 이런 곳에 당신이 다른 이유로 인해 가게 된다면  멀쩡한 사람도 환자로 둔갑시키는데 당신 같은 환자 호주머니를 안 털어 내려고 할 리 있겠는가(이런 의사들 중에는 상해진단서를 당신에게 유리하게 발부해 주는 고마운 의사가 있을 수도 있다). 한의사들 중에도 이런 경우가 있는데 주로 값비싼 보약을 계속 먹으라고 유도한다. 
열번째, 가족 중 누군가가 특이한 병에 걸렸지만 당신이 만난 의사는 그 병에 대해 교과서에서 한 페이지 정도 배운 것이 갖고 있는 지식의 전부일 수도 있다. 그 정도 지식은 당신 역시 찾아 볼 수 있는 것임을 믿어라. 그러므로 인터넷에서 여기저기 찾아보고 필요하다면 의학서적도 살펴 보아라. 영어실력이 있다면 같은 병을 앓았던 사람들의 경험담을 인터넷에서 찾아 보면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미국의 유명 대학병원들을 찾아 보아라). 병이 희귀한 것이라면 반드시 유명 종합병원으로 가라. 그래야 그 병에 대해 치료한 경험이 있는 의사를 만날 수 있다. 
열한번째, 특수 클리닉 간판에 지나친 신뢰는 갖지 마라. 미국에서 클리닉이란 그저 외래진료소라는 의미일 뿐이지 특정 분야의 스페셜리스트라는 말이 절대 아니다. 한국에서도 클리닉이라는 말이 어떤 세분화된 분야에서 특별한 면허를 획득한 전문가들이 운영하는 곳은 결코 아니다.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분야에서의 클리닉들 중 일부는 그 분야의 환자들에게 과도한 기대치를 불어 넣고 고가의 진료비를 받아 낸다. 다른 의사들도 비슷한 치료를 충분히 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환자가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특별한 분야에서의 클리닉은 그런 상업성이 배제되어 있음도 알고 있으라. 

끝으로 부모님이 중병에 걸렸을 때는 반드시 역할 분담을 해라. 모든 자식들이 우루루 다니는 것은 전혀 현명하지 못하다. 제 아무리 효자라고 할지라도 조만간 모두 지치고 만다. 참! 중국여행을 하게 되면 반드시 들리게 되는 곳이 무료진료를 내세운 병원들인데 여러가지 한약재를 판다. 그 한약재들은 같은 가격으로 한국에서 훨씬 질 좋은 재료로 구할 수 있음도 알아 두어라(내가 한번 당한 경험이 있다). 
성격에 맞는 일을 하여라   

독자들이 보내는 질문들 중에서 내가 제일 한심하게 생각하는 질문이 있다. "여유자금 5천만원이 있어서 장사를 하려고 하는데 무슨 장사가 좋을까요" 라는 식의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아니 내가 당신에 대해 전혀 모르는데 그것을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렇게 질문하는 사람들은 내가 어떤 장사를 하라고 구체적으로 지목하면 무슨 장사이건 다 잘 하여 낼 자신이 있다는 말인가  또 여유자금 5천만원이 있을 때 하면 좋은 장사가 있다고 치면 대한민국에서 5천만원의 자금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같은 장사를 하여야 한다는 말인가  
장사건 사업이건 간에 똑 같은 자금을 갖고 똑 같은 장소에서 하더라도 성공하는 사람은 1명이고 망하는 사람이 9명이다. 또한 장사는 위치가 제일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장소라 할지라도 망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어설픈 이론이지만 나는 인간이 하는 일을 오직 네 부류로 나눈다. A: 사람을 상대로 하는 일, B: 기록된 것을 상대로 하는 일, C: 무생물을 상대로 하는 일, D: 몸으로 하는 일. 
물론 무슨 일에서든지 D에서 언급된 몸은 필요하다. 그러나 당사자가 휴가를 가도 일이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 있고 반면에 몸에 무슨 탈이 새기거나 자리를 비우게 되면 수입이 없어져 버리는 일도 있다. 예를 들어 의사가 자리를 비우면 환자를 만나지 못하지만 상인은 점원에게 가게를 맡기고 놀러 갈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을 육체적 현장성이라고 부르는데 그런 의미에서 D 항목을 이해하면 된다. 이것의 중요성이 크면 클수록 자유롭지 못하다. 
이 세상 모든 직업에는 이 네 가지 일들이 복합되어 있으나 핵심적인 부분은 각기 다르다. 사업가,의사,경영자,음식점 주인,상인,영업사원은 A에서 두각이 나타나야 하고, 변호사,회계사,교수,경리는 B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엔지니어,건축사,피아니스트는 C에서, 농부,축구선수,발레리나,성악가는 D에서 그렇게 되어야 한다. 
사람을 상대로 하는 일, 즉 A 부류의 일을 할 때 중요한 것은 성격이다. B 부류에서 일을 잘하려면 학구열과 응용력이 있어야 한다. C에서 중요한 것은 창조성이며 D에서 중요한 것은 육체적 재능이다. 장사나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격이다. 인간의 성격은 크게 내성적인 성격과 외향적인 성격으로 나뉜다. 어느 성격이 우월하다고는 할 수 없으며 단지 영어단어 introvert와 extrovert 에서 나타나듯 하나는 안으로 향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밖으로 향한 성격일 뿐이며 나처럼 양성적인(ambivert) 사람들도 있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그것이 사람을 주로 상대하여야 하는 일이라면 자신의 성격이 외향적인가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매우 내성적인 사람이 장사를 한다고 치자. 고객에게 인사나 제대로 할 수 있겠으며 미소를 지을 수 있겠는가. 망하기 직전의 가게들을 찾아내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정을 보여주었던  신동엽의 신장개업 이라는 TV 프로그램(나는 이 프로그램을 녹화하여 직원 교육용으로 사용하였다)에서 장사를 못하던 사람들이 모두 내성적 성격의 소유자들이었음을 기억하라. 직장에서도 외향적인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나 쉽게 드러나지만 내성적인 사람들은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일을 하고 있는 내성적인 사람들은 성격을 변화시켜 보고자 웅변학원도 다니는 등 갖가지 노력을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다. 성격을 개조하는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 
1976년도 영화 중에 마틴 스콜세지 (Martin Scorsese)감독, 로버트 드니로, 조디 포스터 주연의  택시 드라이버 라는 것이 있다. 베트남 전에서 돌아온 26세 청년 트래비스는 사회의 악을 쓸어버려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불면증에 걸린 야간 택시 운전기사이다. 뉴욕의 뒷골목은 쓰레기 인생들로 가득하다. 그는 그 더럽고 추잡한 인생들을 욕하고, 언젠가 큰 비가 내려 모든 오물을 씻어낼 것이라고 중얼거리며 다닌다. 해병대 출신이지만 뉴욕에서는 소심하기만 한 그는 어느 날 권총 4 개를 구입하고 칼도 준비한다. 그리고 총 쏘는 법과 칼 쓰는 법을 연습하고 혼자서 거울 앞에 서서 누군가를 상상하며 말투와 행동을 연습한다. "Are you talking to me    너 지금 나한테 씨부렁거리냐   그런 연습을 거쳐 그는 대통령후보를 암살하려고 하기도 하지만(그래서 국내상영이 금지되었다가 91년에 가서야 해제되었다) 우연히 만났던 12살 짜리 창녀를 구하고자 사창가에서 피비린내 나는 총격전을 벌이면서 포주를 죽이고 영웅 대접을 받게 된다. 
나는 내성적인 사람들이 성격을 외향적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느냐고 물을 때 마다 이 영화를 권유하면서 어떤 시비가 생기게 되면 욕으로 대응하는 법을 미리 연습하라고 한다. 누군가와 싸울 생각을 하게 되면 성격은 변하기 마련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몇몇 학생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폭행도 당하곤 하기 때문에 죽고 싶다고 메일을 보낸 어느 내성적인 고등학생에게는 이렇게 충고하였다.  선생님이나 부모님과 상의하라는 말 따위는 하지 않는다. 너만 더 괴로워지니까 말이다. 네 힘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주마. 먼저 일기를 써라. 네가 누구에게 어떻게 당하고 있는지를 낱낱이 기록해라. 일기 속에서 복수하겠다느니 때려 죽이고 싶다느니 그런 말은 절대 쓰지 말아라. 그저 네가 얼마나 일방적으로 못된 놈들에게 불쌍하게 당하고 있는지를 눈물겹게 기록하라. 그렇게 한 두 달을 쓴 뒤부터는 기회를 노려라. 그리고 어느 날 수업 중에 너를 왕따 시키는 주모자에게 갑자기 가서 말은 한 마디도 하지 말고 그 어깨를 몽둥이나 의자로 세게 내려 쳐라. 뼈가 부러져도 좋다. 시간이 된다면 다른 녀석들도 팔이건 다리건 뼈가 부러질 정도로 내려쳐라. 단 머리는 때리지 마라. 죽어버리면 살인이 되고 마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미리 남 몰래 연습을 많이 하여라. 네가 사용한 흉기는 미리 준비한 것이면 절대 안 된다. 너는 그저 우발적인 감정에 교실에서 눈에 띄는 것으로 내려 쳤을 뿐이다. 물론 너에게 맞은 녀석들이 너를 폭행죄로 고소하여 경찰서에 끌려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 네 일기장을 보여 주어라. 그리고 그들을 맞고소 해라. 나한테 이런 코치를 받았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말아라. 세이노는 커녕 세이예스도 모른다고 해라. 그래도 보복이 두렵다고  절대 겁내지 마라. 한 번 더 수업 시간에 그들 뒤에서 한 녀석만 반쯤 죽여버려라. 그리고 욕을 배워라. 다시는 그 어느 누구도 너를 건드리지 않을 것이며 성격도 변하게 될 것이다. 폭력 전과자가 되면 어떻게 하느냐고  글쎄다. 그런 놈들에게 당하면서 질질 짜면서 사는 것 보다는 그게 더 낫지 않을까  게다가 정상이 참작되어서 전과자가 될 가능성은 아주 낮다.  
성격을 바꾸기 위한 또 다른 시도는 여행 중에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 앞에서 해 볼 수 있다. 나는 해외 여행을 할 때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한번도 한 해 본 짓거리를 시도하여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를 테면 라이브 밴드가 연주하는 나이트 클럽에서 마이크를 달라고 한 뒤 미친 척하고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러 본다거나 한국에서는 전혀 입지 못하는 옷들을 태연하게 걸치고 다닌다거나 이 나이에 머리에 무쓰를 잔뜩 바르고 올백으로 머리를 넘겨 본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그곳 사람들은 내가 원래 그러려니 생각할 것이다.   
차림새를 바꾸면 행동이 바뀐다는 것도 알아 두어라. 제아무리 점잖은 녀석도 군복을 입고 술을 마시면 언제라도 개망나니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내성적인 성격을 바꾸려면 옷에 변화를 시도하여라. 휴일에 양아치 같은 옷을 일부러 입고 다니는 것도 좋다. 인도 헤나 문신 같은 것으로 팔에 뱀이나 해골 같은 것을 그려 넣고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헤나는 한달 안에 저절로 지워진다. 나는 양팔에 진짜 문신과 비슷한 색의 헤나로 전갈 6마리를 그려 넣고 다닌 적도 있다.) 
마지막으로 예전 친구들은 1년이고 2년이고 잠시 만나지 말아라. 친구들은 당신이 당신답지 않게 행동한다고 지적하면서 변화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변화의 발목은 언제나 친구들과 가족들이 붙잡는다는 것도 기억해라.) 그러므로 새 성격을 본래의 성격으로 인정하는 새 친구들을 사귀어라. 나도 본래는 아주 내성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을 아주 두려워하여 중학교 때에는 재봉틀이라는 별명도 얻었는데 남들 앞에 서면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재래식 재봉틀의 발판을 밟는 다리 모습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 나의 성격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였는데 갑자기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진 데 대한 반항심 비슷한 것이 동인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여학생 앞에서는 수줍어하여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사업 이랍시고 광고 대행업을 시작하면서 외향적인 면과 적극적인 면이 개발되기 시작했고 어느 틈엔가 완전히 외향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사람들에게 비쳐지기 시작했다. 
내성적인 성격을 도저히 바꾸지는 못하겠으나 사업이나 장사를 하고 싶다면 외향적인 사람을 전면에 내세우면 된다(물론 비용이 추가된다). 그렇게 할 상황이 아니라면 앞에서 말한 B,C,D 에 중점이 있는 일을 찾으면 된다. 대인관계에서 생기는 성격상의 문제들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과 상담도 받았다는 30대 독자는 B 분야(회계분야)로 일을 바꾸고 나서야 정신의 안정을 찾았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성격 자체는 어떤 일 혹은 환경 속에 들어가 있느냐에 따라 문제가 되는 것이므로 자기 성격에 어울리지 않는 일은 가능하면 피하는 것이 좋다. 원숭이는 모두 벗겨진 엉덩이를 갖고 있지만 앉아 있는 원숭이의 엉덩이는 남에게 보이지 않는다. 서 있지 못하겠으면 앉아 있으라는 말이다. 
(외향적인 성격이 아닌 사람들은 직장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해야 할 때 도중에 할말이 생각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도 할 것이고 긴장도 하게 될 것이다. 걱정하지 말아라. 나도 한때는 그랬으니까 말이다. 오래 전 나는 다국적 기업 국제회의에서 OHP 필름으로 발표할 경우는 각 필름에서 내가 반드시 말해야 할 것들을 미리 작은 포스트잇에 써서 붙여 놓았다. 발표시에는 필름을 프로젝터 위에 올려 놓으면서 그 메모를 떼어내 손에 쥐고 맥을 이어 나갔다. 노트북에서 프로젝터로 투사시켜 할 경우에는 그 포스트잇을 노트북에 미리 붙여 놓았다. 농담은 물론 예상되는 질문도 미리 대비하였다. 심지어 적절한 참석자 한명에게 이러저러한 질문을 내게 하여 달라고 부탁하기 까지 했다. 아주 내성적인 사람들은 흔히 원고를 미리 만들어 놓고 발표시에 그대로 읽어 나가는데 참가자들과 눈을 마주치는 시간이 거의 없기에 가장 형편없는 방식이다. 프리젠테이션에 대한 책들을 많이 읽어 보고 연습을 수없이 거듭하여라. )  
가난은 사회구조적 현상인가  
어떤 먹물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부지런히 일하고 벌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빈곤의 원인을 결코 게으름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소득불균형이 계속해서 늘어난다는 것은 분명히 구조적인 현상이며, 경제와 정치에 영향을 많이 주는 풍족한 사람들이 만드는 구조의 부작용이다. 우리는 저소득층에게 희망과 비전을 주는 사회환경을 조성해 나가야 한다." 
여기서 "구조적 현상"이라는 것이 뭐냐고 물으면 그 답은 대부분 이렇게 주어진다. "부모가 가난하여 그 자녀는 기회의 평등에서 열외 되어 교육을 못 받았고 교육을 받지 못하는 바람에 조건의 평등에서도 열외 되어 일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다시 가난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구조적 현상이다". 이런 고리를 가난의 원인으로 믿는 사람들은 가난을 사회구조적 문제로 간주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적인 빈곤해결 정책이 필요하다고 믿는다(B.Jordan, M.Rutter, N.Madge 같은 학자들이 대표적인데 사회주의자들이 되게 좋아한다). 
질문: 그렇다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지만 부자가 된 사람들은 그럼 뭐란 말인가  모든 것이 운이었을까  왜 수많은 부자들은 하나같이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을 훈장처럼 달고 다니는 것일까  (게다가 가난한 사람들의 부모 중 절반은 가난하지 않았다는 통계가 도처에 널려 있음을 잊지 말라.) 
가난한 집안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뭘까  국민소득이 수천 달라 미만인 나라들의 경우에서는 저소득-저교육의 순환고리가 빈곤세습의 원인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어린이 노동자 4명 중 3명은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으며 이들은 성인이 돼도 고소득 직업을 가질 수 없어 가난의 악순환에 빠진다. 국민 총생산량이 적다 보니 일자리가 너무나도 부족하기 때문에 학력이 좋은 사람들 만이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1980년대 까지 이런 상황에 처해 있었고 전태일이 분신자살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시대에서 가난은  절대적 가난 이다. 
그러나 그 어느 나라에서건 3D 업종에 대한 회피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고소득 시대에 접어들게 되면 그 말이 맞지 않는다. 물론 고소득 시대에서도 학력이 낮으면 노동 시간은 더 많고 임금은 낮다. 2000년 기준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20세 이상 성인 3천2백55만명의 25.2%에 해당되는 8백23만2천여명이 고졸 미만의 학력을 갖고 있는데 4명 가운데 1명꼴이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인 4백24만명은 중학교 과정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상황이며 주로 50대 이상에 집중되어 있다. 고졸 학력 미만 노동자의 월평균 노동시간은 226.1시간으로 고졸자 213.2시간과 대졸자 190.9시간에 비해 많지만 임금은 고졸자의 87%, 대졸자의 58%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무학력이 곧 실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3D 업종에서는 일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교육의 정도와 상관없이 얼마든지 직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2년 현재 내 친구들이 경영하는 공장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이건 한국인이건 간에 학벌과 전혀 관계없이 꽤 괞찮은 기숙사와 식사를 제공하고 월 130만원에서 월150만원을 지급하고 있으며 한국인 직원에게는 보너스를 추가로 주고 있지만 여전히 직원 구하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무학력자라고 할지라도 이런 공장에서는 환영하며 악착같이 모은다면 2년이 지나면 3천만원은 손에 쥘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일은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 있는 일이 아니냐고 ( 이런 일은 하지 말아라  항목을 참조하라) 맞다. 하지만 일을 골라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면 우선은 아무 일이라도 하면서 돈을 모아야 할 것 아닌가. 3천만원 갖고 뭘 하느냐고  다른 컬럼에서 이야기 하겠지만 할 만한 것들이야 널려 있다.(물론 개 같은 사장을 만나면 사정이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가정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고소득시대의 가난한 가정들은 다음과 같은 문제 중 하나를 안고 있다. 
첫째, 가족 중 어느 한명이 술이나 도박, 과소비 등으로 인하여 엄청난 빚을 지고 있고 다른 가족들은 그 빚을 갚아 주기 위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주로 아버지나 장남이 그 원인제공자인 경우가 많은데 그들은 빚을 만들어 낸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럴듯한 명목으로 다른 가족들의 수입을 갈취하며 집안에 돈이 모일 겨를이 없게 만들고 다른 가족들 모두의 희망을 검게 칠해 놓는다. 
둘째, 가장부터 뭔가 손쉽게 돈 버는 길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일확천금을 꿈꾸며 떼돈을 벌 기회만을 찾는다. 예컨대 아주 높은 이자 혹은 투자수익을 준다는 사기꾼들의 유혹에 넘어가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다 사기꾼에게 갖다 주지만 곧 그 돈 모두를 날리게 된다. 때로는 어떤 사업이나 장사가 돈을 아주 잘 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져서 돈을 박박 긁어 모아 시작하지만 준비 부족과 정신자세 부족으로 인해 망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이렇게 해서 생긴 빚을 갚느라 온 가족의 허리가 휜다. 
셋째, 예전에는 그럭저럭 살았으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거나, 또는 친구나 친척의 빚 보증을 서 주었다가, 있는 재산 몽땅 다 말아 먹는 바람에, 재기할 힘을 잃어버린 경우이다. 가장은 탄식으로 세월을 보내면서 병에 걸리고 남은 가족들 중 일부는 과거 생활 수준으로 되돌아갈 수 없음에 절망하여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사는 경우도 빈번하다. 대부분의 경우 실직 상태이면서도 평일에 양복을 입고 등산을 하면 했지 작업복을 입고 일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넷째, 가장이 자신의 일당을 얼마 이상으로 정해 놓고 그 이하가 되는 일은 하지 않는 이상한 자존심 때문에 가난한 가족이 있다. 거지 같은 생활을 할지언정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은 아예 거들떠 보지 않거나 그런 일을 시도는 하였지만 힘들어 못하겠다고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 땀을 흘리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그들은 편하면서도 돈 많이 주는 일을 찾아 다니며 자기에게 직업이 없는 이유는, 가진 자들이 나쁜 놈들이어서 그런 것이며 정치를 잘 못해서 그런 것이고 경제 정책을 잘못 세우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정말 골 때리는 사람들이다. 
다섯째, 가족들 모두가 돈을 벌지만 그 돈을 하나로 만들지 못하고 각자 관리하면서 각자 소비하기에 가난한 가족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가족 모두가 합심하여 목돈을 먼저 만들어야 주거 환경부터 개선시킬 수 있는데 가족들 각자 따로 따로 행동하다 보니 돈이 모이지 않는다. 이를테면 장녀는 장녀대로 자기 화장품과 옷가지를 사느라고 수입을 거의 다 사용하며 장남은 분수에 넘치게 자가용 하나를 끌고 다니며 친구들과 어울리느라고 수입 이외에 카드 빚 까지 지는, 뭐 그런 식이다. 
여섯째 , 공부도 별로 잘하지 못하는 자식을 어떻게 해서든지 대학에 보내려고, 또는 그 자식들이 성적도 뛰어나지도 않은데 자신의 처지는 생각하지 않고 기쓰고 대학을 가느라고, 가족 수입의 상당 부분을 교육비로 투자하는 바람에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족도 있다. 그 자식이 별볼일 없는 대학이나 심지어 대학원을 마칠 때 까지 용돈까지 쥐어 주는 한심한 가족도 있다. 그 자식이 취직이라도 하면 가족 모두 이제는 고생이 끝났다고 여기지만 이미 성인이 된 형제 자매를 그가 경제적으로 도와주고 나이가 든 부모를 부양하기에는 힘이 너무나 벅차다. 
일곱째, 가족 중 누군가가 병에 걸려 있음으로 인하여 빚을 지고 나머지 가족들의 수입 대부분이 그 빚과 치료비에 바쳐지는 경우이다. 선천적 혹은 후천적 장애로 인하여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어 가난한 경우도 있다. 가족 중에 그런 장애우가 있는 경우 다른 한명의 가족이 그 장애우를 돌보느라고 일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가난한 경우도 있다. 병이나 장애가 없는 부부라고 할지라도 아이를 돌봐 줄 곳이 없어서 남편 혼자만의 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가난에서 탈출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기도 하고 돌보아 줄 가족이 없는 노인들 혹은 남편 없이(혹은 남편이 있어도 개 같다) 어린 아이를 돌보며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주부 가장 역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고소득시대에서 사회구조적 원인 때문에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로 내가 간주하는 것은 오직 일곱번째의 경우 뿐이다. 그 어느 나라에서건 3D 업종에서 근로자를 찾기 어려운 시기가 되면 일자리를 찾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소득 시대의 가난은  절대적 가난 이라기 보다는  상대적 가난 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소비생활 격차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더 큰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혹자는, 가난한 사람들은 무엇인가 하고 싶어도 시작할 자금이 없다는 것을 지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몇 년만 이를 악물고 일을 한다면 얼마든지 수천만원을 모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 빈곤감 때문에 소비를 늘리기 때문에 돈이 쌓이지 않는 것은 왜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게다가 땀 흘려 일하는 것을 싫어하는 태도에서 무슨 목돈 마련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이며 설령 목돈이 쥐어진다 할지라도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뭘 제대로 할 수나 있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빈민들에게는 전월세금의 인상이 너무나 빨라 셋방살이 탈출은 커녕 비슷한 수준의 셋방을 지키기도 어렵다고 지적한다. 내가 제시하는 대안은 대단히 살벌하다. 
가족 중 누군가가 빚을 지고 있다면 특히 그 빚이 이른 바 사업하다가 지게 된 것이건 도박으로 지게 된 것이건 병원비가 아닌 한은 아버지이건 자식이건 동생이건 형이건 절대 갚아 주지 마라. 빚쟁이에게 맞아 죽는다 할지라도 그대로 죽게 내버려 두어라. 절대 일확천금은 꿈꾸지 마라. 남들이 하기 꺼려 하는 일에 기회가 있음을 명심해라. 체면 따위는 던져버리고 남들 사는 모습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아라. 당신이 일을 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당신을 또다시 찾도록 열심히 일하라. 그게 장사와 사업의 성공 비결임을 잊지 말아라. 전쟁 피난민처럼 살면서 절약하고 절약하라. 가족 모두의 수입을 합치고 이자를 은행보다 2-3% 더 주는 곳에 저축하라. 이자를 상당히 많이 준다는 곳들은 모두 사기꾼임을 명심해라. 친척이건 친구이건 그 누구에게도 돈을 절대 빌려주지 말고 당신 가족이 혹은 당신이 돈을 얼마 모았다는 소리는 그 누구에게도 절대 하지 말라. 일류대에 갈 실력이 안 되는 자녀에게는 교육비를 절대 투자하지 말아라. 그리고는 소주 한잔도 마시지 말고 돈을 모으고 또 모아라. 
가난한 젊은이에게 주는 대안 역시 마찬가지이다. 땡전 한푼 없다면 침식을 제공하는 공장 같은 곳에 들어가 2-3년 있으면서 돈을 아귀처럼 모아라. 외출도 하지 말아라. 시간이 남으면 책을 읽어라. 연애는 꿈도 꾸지 마라. 외로우면 자위나 해라. 그 누구에게도 돈을 빌려주지 마라. 집안에 무슨 일이 있건 간에 , 죽을 병이 아니라면 신경 꺼라. 
아…하지만 내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경우, 부부가 함께 일을 하여야 하는 처지이지만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는 경우, 혼자 사는 노인들, 남편도 없이 애가 딸린 아줌마 …등이다. 
가난이 세습되는 이유  
  
1972년 영국의 K. Joseph 은 빈곤의 세습화와 관련하여 '박탈의 순환'(The Cycle of Deprivation) 을 설명하면서 "부적절한 부모가 부적절한 아동을 만들어 낸다"고 하였다. 부모의 부적절한 태도가 가난한 가정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나는 Joseph 의 의견에 동조한다. 내가  가난은 사회구조적 현상인가  항목에서 열거한 가난한 가족들의 사례들 중 첫번째부터 다섯번째 까지 모두가, 그리고 여섯번째에서도 부분적으로는, 부모의 태도가 적절치 못하였음을 보여 준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어느 교육학자(레벤스타인)는 빈민층 어머니들에게 장난감 사용법을 상세히 가르쳐 주면 그 아이들의 인지발달이 증대되게 됨을 입증했다. 교육학자 고든 역시 부모가 알아야 자녀들의 과제 수행능력이 우수하다고 했다. 부모가  제대로 알고 가르칠 때  자녀도 제대로 알게 되고 일도 잘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가난한 부모들은 도대체 그 자녀들에게 무엇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기에 가난을 세습 시킨다는 말인가. 금융지식이나 투자지식인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가난한 부모들은 자녀에게 직업이 좋아야만 잘 살 수 있다고 가르치면서 흔히 이렇게 말한다.  내가 못 배워서 이런 일 밖에는 하지 못하지만 너는 좋은 직업을 가지고 부자로 잘 살아라.  즉 자신이 가난한 이유는 직업이 엿 같아서 그런 것이므로 제대로 교육을 받아 현재 하는 일과는 다른 직업을 가졌다면 가난하게 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자녀는 자기들 역시 부모가 갖고 있는 직업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함을 알게 되면서 가난을 , 그 부모가 대부분 그랬듯이, 마치  운명처럼  받아들이게 된다(가난한 자들 중에는 운명론자가 엄청 많다). 
물론 직업 중에는 부자 되기 어려운 직업들이 있다. 일한 대가가 사회적으로 정하여진 직업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일은 하지 말아라 는 항목을 참조하라). 하지만 그런 직업들도 부자가 되기 어려운 직업일 뿐이지 찢어지게 가난한 상황에서 탈출이 불가능한 절망적인 직업은 결코 아니다. 부자 되기 어려운 직업에서도 종종 부자가 튀어 나오지 않는가 말이다. 
직업이란 식당의 메뉴 같은 것이다. 식당 주인들은 어느 한 가지 메뉴를 해보아서 잘 안되면 자기 탓을 하는 것이 아니라 메뉴 탓, 위치 탓, 인테리어 탓을 하며 다른 메뉴를 올려 보지만 그것 역시 될 리가 없다. 그러다 보니 메뉴 종류만 늘어나지만 무엇하나 제대로 맛이 나는 것이 없다. 뭐가 잘못 된 것일까. 한 가지 일에서도 혼을 바쳐야 하는데 그렇게 할 줄을 도통 모르기 때문이다. 질문: 가난한 막노동자들 중 맡은 일을 최선을 다해 잘하는 사람을 보았는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나은 사람들이야 찾을 수 있지만 모두가 다 도토리 키재기이며 장인 정신을 찾아 보기란 정말 어렵다. 일을 어떻게 하여야 잘하는 것인지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의 종류만 따지는 이러한 태도는 자녀들에게 그대로 유전되고 그 결과 가난이 세습되고 만다. 
이 사회에서 대가를 더 받는 길은, 일을 남들 보다 더 잘하는데 있음을 부모부터 모르고 있는 마당에 그 자녀들이 교육의 기회를 제공받는다고 해서 가난에서 모두 탈출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빈부간의 교육불평등 및 학력격차를 없애고자 엄청난 노력과 투자를 하여 온 수많은 선진국들 가운데 대표적으로 미국에서의 상황을 살펴보자. 한때 미국에서는 흑인들이 계속 가난한 이유를 그들이 다니는 학교의 시설이 형편 없고 교사의 질이 떨어지며 정부의 교육투자 역시 빈약하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1966년 존스홉킨스대 사회학과 제임스 콜먼 교수가 무려 60여 만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뜻밖의 사실을 보여 주었는데 학교 상황과는 상관없이 빈곤층 자녀들은 성장과정에서 부모의 빈곤층 문화를 자연스럽게 학습하게 되면서 결국 가난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하면 빈민층 자녀에게 제 아무리 좋은 교육 환경을 제공해 준다고 해도 부모 때문에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정부가 생각한 해결책은 빈민층 자녀가 빈곤층 문화가 아닌 다른 문화를 접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결국 어느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건 여러 계층이 섞이도록 법이 정하여졌고 흑인이나 백인만 다니는 학교 같은 것은 사라지게 되었다. 이러한 조치가 조금은 상황을 개선시켜주었지만 여전히 가난한 부모의 영향에서 벗어나지는 못하기 때문에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었다. 특히 자기 앞가림 하기에도 바쁜 편부나 편모 슬하에서 자라는 자녀가 충분한 교육적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아시아인들은, 특히 한국인들은, 가난해도 열심히 공부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부모가 갖고 있고 자녀들을 교육시키기 때문에 이민 사회에서 자리를 잡게 되지만 미국으로 이민간 부모들 대다수는 그나마 모국에서 교육을 받았던 계층임을 잊어서는 결코 안 된다.) 
결국 문제 해결의 열쇠는 저소득층 자녀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과 병행하여 그 부모에게도 부적절한 사고와 행동을 제거하도록 교육을 제공하는 것 뿐이다. 그런데 이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예컨대 한국의 빈민 계층에게  당신 아버지가 가난한 이유, 당신 역시 가난한 이유, 당신의 자녀 마저 앞으로 가난하게 살게 되는 이유는 당신 아버지의 생각과 행동이 글러 먹었기 때문이며, 그 생각을 세습 받은 당신 역시 생각과 행동이 글러 먹었기에 당신 자녀 역시 마찬가지로 가난하게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생각과 행동을 바꾸어 일을 어떻게 하여야 남들보다 더 잘하는가를 생각하세요. 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실제로 노동자들에게 그런 뜻의 말을 조심스럽게 몇 차례 하곤 했었는데 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지랄하고 자빠졌네, 철저히 부려먹으려고 환장을 했구만 이라는 말이나 안 들으면 다행이었고 언제인가 부터는 그런 자들을 보아도 침묵하게 되었다. 
물론  개천에서 용난다 는 말처럼 어떤 자녀들은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다. 그러나 빈민 가정 자녀들 대부분은 제 아무리 교육의 기회가 주어져도 가정이 가난하다는 사실 자체에서 이미 낙망하여 자신의 미래를 어둡게 여기고 공부하여 봤자 별 볼일 없다고 단정하며 그저 빨리 부자가 되는 길만을 찾는다. 게다가 이 사회에서 일한 대가를 더욱 많이 얻어내는 방법은 무시하고, 그저 투자를 잘하여야 부자가 된다, 부자가 되는데 있어서 학교공부는 필요 없다는 헛소리가 세상에 퍼지면서 더더욱 돈 빨리 버는 길만 찾아 나서지만 결국은 부모의 가난을 답습하고 만다. 
여기서 가난한 가정의 자녀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 : 너희 부모가 가난한 이유는 학력이 없거나 직업이 후져서 그런 것이 절대 아니다. 일을 통해 이 사회에서 대가를 얻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너희 부모가 이 사회에서 부자 되는 법을 진짜 알고 있으리라고 믿느냐  천만의 말씀이다. 가난에서 탈출하여 부자가 된 사람 만이 그 비결을 제대로 아는 법이다. 내가 바로 그런 부자이며 나는 너희들 호주머리 속 푼돈을 노리고자 이 글을 쓰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금융지식이 많고 투자를 잘해야 부자가 된다고  너희에게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누군지 아느냐  그런 책을 써서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거나 증권회사나 투자회사 같은 곳들이다. 그들이 너희에게 일 잘하는 법에 대해 한마디라도 하더냐  이것은 미국이건 어디건 마찬가지이며 그들은 모두 너희들이 그나마 모은 푼돈을 모아서 자기들이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이다, 이 멍청한 놈들아. 
이제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가난한 집 중 고등학교 학생이라면 일단은 코피 터지도록 공부해라. 돈이 없어 과외를 못 받고 학원을 못 다닌다고 서러워 하지 말아라. 교육방송이나 인터넷 과외에 관심을 가져라.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으면 선생님을 붙들고 늘어져라. 집안이 제 아무리 콩가루 집안이라고 해도 신경 쓰지 마라. 부모가 이혼을 했건, 한쪽에서 소주병이 난무하건, 한쪽에서 통곡소리만 들리건 간에 귀를 막고 이를 악물고 공부만 해라. 엉엉 울고 싶은 상황이라면 울어라. 하지만 5분 이상 울지 말고 삼켜 버리고 하늘을 향해  으악!  크게 한번 외치고 다시 공부해라. 친구들이 무엇을 갖고 있건 간에 그것을 부러워 하지 말아라. 휴대폰이 없다고 해서 우울해 하지 말고 그것이 없음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겨라. 돈이 없어서 누군가로부터 괄시와 모멸을 당했다면 그것을 잊지 말아라. 그리고 네가 받은 모멸감과 네가 흘린 눈물로 날카로운 비수를 만들어 마음 속에 '나, 죽어도 죽어도 이 날을 영원히 잊지 않으리라'고 진하게 난도질 하고 다시 공부해라. 집안이 어려워서 학비라도 벌겠다는 생각에 아르바이트 하겠다고 깝죽대지 말고 그냥 죽어라고 공부만 해라. 공부는 궁극적으로 엉덩이 무거운 사람이 이기는 게임임을 명심해라. 그리고 최고의 학교에 들어가거나 최고의 장학금을 반드시 타라. 그게 아르바이트 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짭짤한 좋은 돈벌이라는 것을 기억해라. 이성교제  개소리 하지 말고 시간을 아깝게 여기고 바보처럼 공부만 해라. 명심해라. 이 사회는 학벌사회이고 이 학벌 사회에서 출세하는 가장 손 쉬운 길은 일단은 최고의 학교를 나오는 것이다. 나를 믿어라. 일단은 공부하는 것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생존 방식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렇게 공부를 1~2년 해도 도대체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면 너희는 공부하고는 안 맞는다. 그러나 학교를 그만두지는 말아라. 형편이 허락하는데 까지는 다니고 학교공부 대신 닥치는 대로 일하는 방법과 장사나 사업에 대한 책을 읽어라. 아르바이트도 해라. 기술학교에 다닌다면 배우는 분야에서 우선 진짜 귀신이 되어라. 졸업 후에는 학벌 사회 근처에는 얼씬 거리지 말아라. 그리고 절대 너희 가난한 부모가 돈이나 직업, 혹은 일과 관련하여 하는 말은 믿지 말아라. 한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 버려라. 절대 절망하지 말아라. 너희에게는 다른 길이 있고 그 길에는 돈을 벌 수 있는 방법들이 도처에 널려 있음을 믿어라.  
가난한 사람들은 착하고 선량한가  
지금으로부터 십 몇 년 전인 1990년 봄 , 서울 천호동의 반지하 셋방에서 살던 엄모씨(40세)와 부인(38), 그리고 아들(8), 딸(6) 모두가 연탄불을 피워놓고 동반자살한 일이 있었다. 엄씨 가족은 4년 전부터 이 셋방에서 보증금 50만원 월세 9만원을 내고 살아왔는데 집주인이 집을 수리하여야 하므로 방을 비워 달라고 해 이사 갈 집을 물색했으나 오른 방값을 마련하지 못해 고민하다가 결국 자살하고 만 것이었다. 
서울에서 고교를 나온 엄씨가 처음 택한 직업은 군에서 배운 운전이었다. 그는 결혼 후 서너군데 직장에서 차를 몰았으며 모 국회의원의 자가용 운전사로 월60만원을 받고 일하다 차를 망가뜨린 실수때문에 그만 두었고 몇 개월 전부터 친구가 경기도 부천에서 하는 부동산 소개업을 도와줬으나 벌이는 한 달에 삼십만원 선에 불과했고 일정치 않았다. 어쩌면 부동산 소개 일을 하면서 시세에 밝았다는 점이 그를 지레 주눅들게 했는지도 모른다. 
엄씨는 2남1녀의 맏이였다. 그래서 서울 변두리에서 동생과 함께 사는 부모를 모실 수 없는 상황을 늘 괴롭게 여겼지만 죽기 며칠 전에도 노모에게 생활비로 15만원을 부쳤다. 부인은 집에서 자수미싱을 하며 생계를 꾸렸으나 죽기 얼마 전 전세 목돈을 만들고자 재봉틀마저 팔았다. 그러나 이때 받은 76만원은 옮겨갈 방을 구하는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 같다. 대신 어린 아들은 그날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엄마가 미싱을 팔았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TV소리가 잘 들렸기 때문이다. 방안도 참 깨끗해졌다.  
명성교회 신자였던 엄씨는 유서에 이렇게 적었다.  주님께서 현숙한 처녀를 어머님 눈에 띄게 하셔서 좋은 아내를 주셨고 귀여운 남매까지 선물로 주시는 축복을 허락하셨다.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 가족인가. 그러나 한가지, 다만 한가지 나에게 물질의 축복, 남들처럼 돈 잘 버는 재주만은 주지 않으셨다. 가족들이 함께 머물 수 있는 한 뼘의 공간이라도 허락하셔서 가엾은 부모님을 모시고 하나님 뜻대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하나님도 이제 없는 자의 소원을 들어주어 그들에게도 방을 마련해 달라 … 집을 비워달라는 얘기를 들은 후부터 고민에 빠져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집 문제 하나 해결 못하는 무능한 가장. 이런 남편을 하늘처럼 섬기며 불평 한마디 해본 적이 없이 늘 쾌활한 아내,당신은 정녕 천사이리라. 나쁜 짓을 하면 하나님께 혼난다는 말을 종알거리는 아이들, 너희도 정녕 천사이리라…전세금 마련을 위해 추진했던 일들이 모두 제대로 안돼 이젠 방법이 없다. 나 혼자 세상을 떠나려고 했지만.…이 살벌하고 각박한 세상에 떨어진 처자식의 앞날이 얼마나 고생스러울 것인가.…천사처럼 착한 아내의 모습도, 아이들도 이제는 볼 수 없겠구나.… 아버지때부터 시작되어 오고 있는 가난이 나에게 물려졌고,기적이 없는 한 자식들에게도 물려지게 될 것이다. 빈익빈,부익부의 악순환이 끝날 조짐도 없다. 폭등하는 부동산가격에 내집 마련의 꿈은 고사하고 매년 오르는 집세도 충당할 수 없는 서민의 비애를 자식들에게는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 정치하는 자들,특히 경제 담당자들이 탁상공론으로 실시하는 경제정책마다 빗나가고 실패하는 우를 범하여 가난한 서민들의 목을 더 이상 조르지 않도록 그들에게 능력과 지혜를 주시어서 없는 자들의 절망과 좌절이 계속되지 않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엄씨는 죽기 전 장례비용이라고 적은 봉투에 10만원짜리 자기앞수표 9장과 1만원 권 지폐 10장 등 1백만원을 담아 방안 책상 위에 놓아두었으며 부동산 소개일을 하면서 고객을 태우고 다니고자 월부로 산 프레스토 승용차를 팔아 장례비용에 보태달라고 까지 했다. (이상은 당시의 거의 모든 신문기사들을 모아 재편집한 것이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이야기 아닌가. 이 착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왜 집 문제 때문에 자살하여야 하는가. 집주인이 나쁜 놈이다. -- 아마도 당신은 그렇게 생각할 는지도 모른다. 당시 어느 경제학 교수는 모 일간지에서 다음과 같이 성토했다.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잘못된 분배구조가 고쳐지지 않으면 서민들의 생활이 더욱 어려워진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비참과 혼란은 비인간적 이기심에 상당부분 기인한다… 공정한 분배를 위한 제도 개혁들이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 국민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가난한 집의 아이들이 다시는 가난하기 때문에 죽는 일이 없도록 다 함께 생각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자신에게 손해가 되더라도 사회적으로 필요한 공정한 제도개혁이면 반대하지 않으며, 집주인이라고 마음대로 집세를 올리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그날로 살기 좋은 사회가 될 것이다." 
나는 다르게 생각하느냐고  그렇다. 첫째 나는  듣기 좋은 멋진 말 을 하는 그 교수가 세를 놓고 있는 집이 있다면 당연히 시세에 따라 세를 받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자기 딴에는 자기 마음대로 집세를 받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과연 세입자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둘째, 자살한 엄씨가 살던 셋방의 주인은 우체국 집배원이었고 그 역시 넉넉한 편은 전혀 아니었다. 집이 낡아 수리를 하고자 방을 빼달라고 한 그에게 돌을 던지지 말아라. 셋째, 집주인들이 마음대로 집세를 올리지 못하게 되면 가난한 사람들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된다는 것은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아무도 임대 주택을 구입하려고 하지 않기에 셋집의 수는 대폭 줄게 되고 임대가격은 대폭 올라버리게 된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더욱 살기 힘들어지게 된다는 말이다. 이것은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증명된 바 있다. 넷째 거의 모든 기자, 소설가, 방송작가, 교수, 종교인 등이 자살한 엄씨를 "착하고 선량하고 효자인데다가 가족도 사랑하였고 성실하였으나 가난하였기에 갑자기 오른 집세 때문에 절망하여 어쩔 수 없이 자살한 사람"으로 묘사하였지만 실제 상황을 좀더 파악하여야 한다. 
아주 아주 차갑게, 얼음 보다 더 냉정한 판단력으로 그의 동반자살을 살펴보자. 그는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실수를 했음에도 그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듯 보인다. 운전 기사의 임금은 결코 넉넉하지는 않지만 본인의 생활태도에 따라 얼마든지 저축이 가능한 직업이다. 하지만 그는 군 제대 후 무려 15년 이상 운전을 하였음에도 저축이 없었다. 그가 자가용 기사 생활을 하였다면 그 직업은 주인이 아무리 엿 같아도 한 곳에서 오래 있어야 대우를 받는 직업이다. 하지만 그는 직장을 자주 옮겼다. 국회의원 자가용 기사를 하면서는 월 60만원의 봉급을 받았는데 1990년 당시는 근로자 최저임금이 16만5천6백원이었고 월급 100만원 이상을 받은 근로자가 전체 근로자의 5~6 % 에 불과하였음에 비추어 볼 때 적은 봉급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군대에서부터 운전을 하였기에 운전에 능숙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수로 차를 망가뜨렸고 그 일로 인해 또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는 친구가 하는 부동산중개업소에 나가면서 고객 접대용이라는 명분으로 프레스토 승용차를 월부로 샀지만 집은 천호동이었고 일터는 부천이었다. 그 먼 거리를 자가용으로 출퇴근하였다는 것은 그의 처지로 볼 때 정말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고객 접대용이라는 것은 핑계이고 자가용을 갖고 싶은 욕망 혹은 자가용 출퇴근을 하고 싶은 욕망을 채우려고 앞뒤 제대로 가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이사를 준비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와 부인이 다니던 교회가 천호동 근방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가  교회에서 볼 때 신실한  교인이었다면 주일 근무는 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그의 고용주들은 일요 골프장에 가려고 하지 않는 그를 탐탐치 않게 여겼을 수도 있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이, 특히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이,  신앙 우선, 생활 나중 으로 사는 것을 별로 좋게 여기지 않는다. 특정 교회에만 은혜가 있다고 믿는 태도도 기복신앙과 다를 바 없다. 
게다가 차를 월부로 산 것을 보면 신차였다는 말이며 프레스토보다 더 싼 차들도 있었는데 월부로 그 차를 구입하였다. 보증금 50만원 월세 9만원 짜리 사글세 집에서 사는 처지에 도대체 어디서 그런 배짱이 생겼을까  여기서 나는 모방심리를 본다. 그리고 자동차 구입으로 인하여 당연히 운영비, 보험료 등으로 돈이 나갔을 것이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 업계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친구가 한다니까 같은 일에 뛰어 든 것 역시 무모하기 짝이 없다. 나는 그가 그 일을 위하여 도대체 얼마나 준비했었는지 의심스럽다. 1990년은 이미 산업계에서 3D 업종 전체에 대한 근로기피 현상이 나타나 일당 3~4 만원에도 사람을 구하기 힘들었던 시기였다. 정부에서 국군의 날과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시키자 한국노총에서 대정부 규탄집회를 잇달아 개최하면서 총파업을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던 시기도 그 해였다. 그가 다른 일을 하고자 하려고 했다면 얼마든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음에도 잘 알지도 못하는 복덕방 사무실에 나간 이유가 도대체 뭘까  돈도 잘 벌고 편해 보였기 때문 아닐까  그가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들을 하고자 하려는 마음만 있었다면 그는 보다 더 안정된 수입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능력과 지혜가 필요했던 사람은 우선은 그 자신이었다. 아버지 때부터 시작된 가난이 자기에게 물려진 원인은 그의 소비생활과 일하는 태도 때문이지 피할 수 없는 유전인자를 물려 받았기 때문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때문에 나는 그를  착하고 선량한 사람 으로 여기기 보다는 "자기 분수를 모르고 소비생활을 제대로 통제하지도 않으면서도 자기 자신은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절망을 초대한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내가 십 몇 년 전의 가족 동반자살 사건을 언급하고 차갑고 싸늘한 눈으로 이야기 하는 이유는  가난한 사람들은 착하고 선량하다 고 충분히 말할 수 있었던 산업화시대의 보편적 사고가 90년대 이후의 고소득시대에서도 계속 수정 없이 이어지는 잘못이 우리 사회에 있기 때문이다. 고소득 시대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진실을 그렇게 감성적으로 왜곡시킨 최대 원인 제공자들은 일부 기자,교수,방송작가,소설가 등 먹물들이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가난한 빈민들이 얼마나 불쌍하고 가난한지를 비극적으로 설명하면서 착한 사람들로 묘사하는데 여전히 익숙하다. 
말이 너무 지나치지 않느냐고  알았다. 하지만 흥분하지 말고 가까운 지방자치단체를 찾아가 사회복지사들에게 빈민층에 대한 그들의 솔직한 의견을 들어 보아라. 그들은 빈민층을 누구보다도 자주 접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회복지사들은 공통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빈민층을 만나보면 일하지 않으려는 부모들과 어떻게 하면 거짓말을 해서 지원금을 타먹을까를 궁리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그것을 당연한 권리로 생각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다. 우리는 보통 가난한 사람들을 착하고 최선을 다하지만 이 사회에서 대접을 못 받는 불쌍한 사람으로 여기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작업을 시켜보면 게으름을 피우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정부에서 기껏 여러 일터를 만들어 주었지만 어슬렁거리기만 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이다. 몇 년전 세화섬유의 곽 태환 사장은  일할 사람을 구하고자 노숙자 수용소까지 가 보았으나 한 달 100만원 버는 것이 양에 차지 않을 만큼 배부른 사람들이 너무 많다 고 까지 했다. 
가난한 자의 게으름이나 나태함은 누구도 비난하려고 하지 않는다. 여전히 가난한 자의 가난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부유한 자의 재산은 악으로만 비쳐진다. 심지어 가난 때문에 저지른 죄는 정상이 참작되어 처벌이 완화된다. 먹고 살려고 하는 짓은 불법이라고 할지라도 타인에 대한 범죄만 아니라면 경찰도 종종 눈감아 준다. "가난이 죄지 내가 무슨 죄인이냐 . 가난한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사람까지 괄시하고 무시하는 거냐"고 꺼이꺼이 목놓아 울게 되면 그 누구도 말을 못하게 된다. 가난은 죄가 아니기에 가난한 사람들은 어거지를 써도 용납하는 것이 고소득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네 국민정서라는 말이다. 행여나 그런 생각을 외국인들에게는 말하지 말라. 가난 때문에 죄를 지었으니 형을 감면하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라가 이 세상에는 많지 않다. 오히려 스위스처럼 가난하게 사는 것 자체를 죄라고 여기는 나라들이 있음을 기억하라. 
가난한 자의 특성은 버려라  
군에서 나는 저녁에 도서관장을 하였다. 주제와 동떨어진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이에 대하여 질문하는 독자들이 있었기에 나의 군생활을 간략히 설명하고자 한다. 가난했던 나는 고교 졸업 후 이민을 염두에 두고 자동차정비학원을 잠시 다닌 뒤 공군에 기술병으로 지원 입대하였다. 하지만 정작 내가 자대에서 받았던 보직은 정비와는 전혀 무관한 부동산 관리 업무였는데 고교시절에 광고대행업을 했던 경력이 고려되어 주어진 업무였다. 
도서관장이라는 보직이 정식으로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는 새마을 운동 바람이 세게 불었던 시기였고 군대 내에서도 그 운동이 강제적으로 펼쳐지던 때 였다. 부동산 관리라고 하는 업무의  부패적 특성상  부대장과 가까이 지냈던 나는, 군 새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부대 도서관을 만들고 휴가 장병들은 무조건 책 2권을 가져오도록 하고 계급별로 월급에서 얼마씩 떼어내 매월 도서를 구입하자고 제안을 하였다. 명분은  군 생활 중 사기를 진작시키고 인간 형성에 도움을 주며 전역 후 사회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지만 내 속셈은 구타와 집합이 심심치 않았던 지긋지긋한 내무반에서 도망쳐 나오고 책이나 많이 읽고자 하는 것이었다(원래 명분이란 이처럼 개인의 욕심을 그럴듯하게 포장해주는 습성이 있으므로 언제나 명분에 속지말고 그 속내가 무엇인지를 파악하여야 한다.) 
부대장이 볼 때 나의 제안은 자신의 새마을 운동 실천 실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이기도 하였다. 결국 나는 내가 바라던 대로 저녁에는 도서관 관장이 되었고 도서관 당직이라는 핑계로 점호에도 불참한 채 도서관내 야전침대에서 혼자 잠을 자면서 밤늦도록 책을 읽었다. 
주로 읽은 것들은 현대 소설과 실용 서적들이었고 무협지 등은 거의 읽지 않았다. 제대 후에는 그 당시 가장 컸던 종로서적센타와 도서관에서 책을 보았다.(어쩌다 남산도서관에 가면 그때 생각이 나서 마음이 찡하여진다. 도시락 찬밥을 말아 먹을 수 있는 우동 국물이 10원 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거 하나 제대로 사 먹을 수 없었던 때가 그리워지는 것은 웬일일까.) 성공에 대한 책들도 많이 읽었지만 실전 노하우는 하나도 없고 "희망을 갖고 적극적 사고방식으로 열심히 살아라"는 뜬구름 잡기들이었기에 읽을 수록 실망이 컸다. 
오히려 빈민들에 대한 책과 논문들이 손에 먼저 잡혔다. 하지만 가난을 묘사한 대부분의 소설은 작가가 측은한 눈으로(혹은 따듯한 눈으로, 혹은 가난을 업보나 운명적인 것으로 믿는 마음으로, 혹은 가난은 착한 심성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으로 등등) 묘사하기 때문에 가난의 현상 만을 엿 볼 수 있었다. 보다 더 구체적인 내용들은 논문이나 연구 보고서에서 얻을 수 있었는데(너무 오래 전의 일이어서 제목들 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나는 달동네에서 파는 요구르트는 이름도 못 들어 본 회사의 것이지만 부자 동네에서 파는 유명 요구르트 보다도 더 비싸고 품질은 더 떨어진다는 것도 알았고 어떻게 행동하면 가난의 굴레에 빠져 들어가는지도 어렴풋이나마 배웠다. 서울역 앞 588 창녀촌으로 유명하였던 양동의 쪽방에서 잠시 살아 본 경험도 개인적으로는 큰 배움이었다. 
박완서의 단편  도둑맞은 가난 에서 여주인공의 가족은 아버지가 실직한 이후 어머니의 허영심과 체면 때문에 급속히 가난하게 된다. 결국 모든 재산을 날리고 판자촌으로 이사 온다. 그녀는 인형옷을 만드는 일이라도 하지만 가족들은 가난을 껴안지 못한 채 연탄가스로 자살하고 그녀 홀로 남는다. 어느날 그녀는 멕기 공장에 다니는 청년을 알게 되고  같이서 살면 하룻 밤에 연탄 반장을 아낄 수 있지 않느냐 는 이유로 그와 동거를 한다. 그러나 그 청년은 부자집 대학생 아들. 아버지가 빈민촌에 보내 가난을 경험시킨 것일 뿐 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은 "이제는 부자들이 가난 마저도 훔쳐간다"고 울부짖는다. 
나도 소설 속의 그 부자 아버지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살펴볼 것을 권유한다. 내가 부자가 된 것은 부자들에 대한 정보도 없었던 시절에 부자들을 따라 해서가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따라 하지 않으려고 기를 썼기 때문이다.( 70년대에는 부자 되는 법을 다룬 책도 거의 없었고 내 기억으로는 기껏해야 "소자본으로 부자 되는 법"이라는 책 한 권 만 있었을 뿐이다.) 왜 사람들은 백만장자들의 특성만 배우려고 하는가. 가난한 자들에게도 공통적 특성이 있다. 그 특성들은  가난이 세습되는 이유  항목에서 설명하였듯이 부모로부터 주로 영향을 받게 되지만 부모와는 상관없이 사회에서 보유하게 되는 경우도 많은 듯 하다. 
첫째, 돈 받는 것 이상으로는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정해진 시간에 좀 더 많은 땀을 흘리거나 시간을 초과하여 일한다고 해서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닌데 고용주들이 그런 요구를 하는 것은 자기를 좀 더 부려먹으려는 수작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긴다. 오늘 1시간을 더 하였다면 그날 저녁 당장 대가가 더 주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니 돈 있는 사람들이 볼 때는 모두가 그놈이 그놈인 셈이므로 잘해 줄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고용주들의 이러한 태도를 가난한 사람들은  있는 놈들이 더 지독하다 고 바라본다.  있는 놈들 이  일을 더 헌신적으로 잘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어한다는 것은 까맣게 모르며, 기회는 그  있는 놈들 로부터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둘째, 아무 일이나 하려고 하지 않는다. 농촌인구가 도시로 몰려들던 60년대와 70년대에 미국인 문화인류학자 빈센트 브란트는 청계천 주변의 판자촌에 살면서 빈민층 연구를 하였고 흥미있는 논문을 발표했었다. 그 내용은, 한국의 판자촌 주민들은 외국의 슬럼가처럼 숙명처럼 가난이 뒤따르는 곳이 아니라 일정기간이 지나면 주택가로 옮겨간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은 6.25 동란 때 남쪽으로 내려온 피난민들이 처음에는 빈민이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가난에서 상당수가 탈출하였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였을까  일자리가 너무나도 부족한 상황에서 아무 일이나 닥치는 대로 하다가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일을 하지 않으면 당장 굶어 죽는 처지였기에 일을 가려서 한다거나 몸이 편한 일만을 찾는다는 것은 꿈 같은 이야기였다. 지금의 수많은 빈민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하지 않아도 굶어죽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일까  
셋째, 자신이 받았던 돈의 액수 이하로는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루에 오만원을 받는 일을 해온 사람은 당장 일거리가 많지 않음에도 자신의 일당을 낮추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은 성남의 새벽 인력시장이나 농촌 인력 시장에서 아주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나 같으면 하루 오만원 받는 일을 일주일에 3일 하느니 일단은 하루 3만원 일거리를 일주일 내내 할 것이고 나를 고용한 사람이 나를 반드시 다시 찾도록 만들 것이다. 그때 비로서 나는 내가 얼마를 받고 싶어하는지를 말할 것이다. 가난한 자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 이치를 모르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설픈 자존심 때문일까. 
넷째,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돈이 생기면 쓰고 싶어 안달이 난다. 예컨대 반포 고속 터미널 지하도 근처의 한 편의점(여기 예전 주인을 내가 조금 안다)에서 양주를 구입하는 고객들 중에는 그 지하도에서 노숙하는 사람들도 있다. 비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돈을 아끼지 않으며 기분 내키는 대로 써 버린다.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비상금을 축 내지는 않는다는 중국인들과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약간의 돈이라도 생기면 술집으로 가거나 심지어 그곳 여자들에게 돈을 뿌리는 한심한 놈들도 자주 눈에 뜨인다. 이런 습성은 그 자녀에게도 물려지고 그 자녀들 역시 한푼이라도 생기게 되면 오락실로 달려가거나 PC 방에 가서 진을 친다. 
다섯째, 운명론을 받아들이고 사주팔자를 신봉한다. 정주영은 무엇을 했어도 부자가 될 팔자였지만 자신은 뭘 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고무신을 신고 달려도 신이 벗겨지지 않지만 자신은 워커를 신고 뛰어도 신이 벗겨져 넘어질 팔자이며 부자될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다고 믿는다. 때문에 노력에 의존하지 않고 점술가들이 하는 말에 귀를 쫑긋거린다. 생각과 행동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가난을 자초한다는 지적은 개 짖는 소리로 여기며 자신은 하느라고 하는데 타고난 팔자가 더러워서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실제로는 사주팔자를 자신의 게으름에 대한 방패막이로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여섯째, 세상을 일방적으로 해석하고 쉽게 흥분한다. 순박하여서가 아니라 전체적 상황을 보는 시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흑백 논리에 아주 강하다. 세상은 회색인데도 말이다. 자기가 가난한 것은 못 배웠기 때문이거나 남들보다 약삭빠르지 못하기 때문이며 "있는 놈들이 돈을 다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 경우도 많다. 자기 판단에 대해 스스로 의심을 하지 않는다. 때문에 자기 생각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별로 없다. 
일곱째, 경험자의 이야기 보다는 자기 판단을 더 믿는다. 예컨대 선택의 기로에 서서 나에게 조언을 구한 사람들 중 많은 수는 내가 충고한대로 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한다. 나는 이게 참 이상하다. 그렇게 할 것을 왜 아까운 내 시간을 허비하게 만드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게 자기 생각대로 하다가 세월이 지나면 다시 찾아오는데 내가 말해주면 뭣하랴. 또 다시 자기 생각대로 할 것이 뻔한데. 그들은 우주에는 총 3201억 5983만 7647개의 별이 있다고 내가 말하면 믿지만(내가 알게 뭐냐), 내가 경험적으로 알게 된 주의 사항들을 말하면 믿지 않는다. 하긴 칠조심이라고 써 놓아도 직접 손을 대보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지 않은가. 
당신이 미래에 부자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가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가난한 친구들을 찾아가 부자가 되는 방법에 대한 그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보라. 그들의 말에 당신이 공감을 한다면 당신도 가난한 자들의 공통적 특성을 갖고 있음을 깨달아라. 

고학력은 부자가 되는데 도움이 되는가  
공부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학력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교육제도권 내에서의 공부와 능력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제도권 밖에서의 공부가 그것이다. 나는 제도권 밖, 즉 사회에서 여러 책들을 보며 하는 공부를 대단히 강조하는 사람이다. 제도권 내에서의 공부와 관련하여 말한다면, 학교공부를  아주 잘하면  부자가 될 기회의 첫 단추가 주어진다. 
그렇다면 제도권 내에서 공부를  오래 하는 것 , 즉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마치거나 박사 학위까지 얻는 고학력은 부자가 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먼저 대학의 경우를 살펴보자. 대학을 나오면 고졸자 보다 취직하는데 유리하고 전반적으로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주로 일류대 출신들이 그렇다는 말이고 전체적으로 따진다면 예외도 꽤 많다. 예를 들어 미국 포브스지는 미국 전체 대졸자 중 21%는 고졸자 보다도 평균 수입이 적다고 하였다. 즉 미국 대졸자의 적어도 21%는 대학을 가지 말고 차라리 그 돈으로 연 5% 이율의 채권에 투자하였다면 50번째 생일에 50만 달러를 받을 수 있는데 이 금액은 대부분의 대졸자는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돈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경제적 시간적 투자 측면에서 볼 때 대학을 안 가는 것이 오히려 좋을 사람들이 부모의 강압에 못 이겨, 또는 자존심이나 얼어 죽을 체면 비슷한 것 때문에, 또는 대학에 가면 뭐 특별한 것이라도 배우게 되는 줄로 오해하여, 또는 달리 할 일이 없어서, 혹은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아마도 이게 가장 클 것 같다), 기 쓰고 대학을 가는 경우를 나는 종종 본다. 미국의 통계 수치를 적용한다면 한국의 대학생 5명 중 1명은 길을 잘못 든 셈이 되는데 한국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느끼기에는 그 보다 더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것 같다. 
대학원의 경우는 어떨까  대학원에 가는 사람들 중에는 취직이 안되니까 경제상황이 좋아 질 때 까지 도피처로 삼는 경우도 있고, 막연히 대학원을 나오면 뭔가 더 유리한 고지에 서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는 경우도 있으며, 직장을 다니다가 뭔가 잘 안 풀리기에 대학원을 탈출구로 생각하면서 진학하는 사람도 있다. 과연 대학원을 졸업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유망한 투자일까  
여기서 먼저 알아야 할 사실은, 제도권 내에서의 공부를 가장 장려하면서 학력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사람들은 바로 대학의 교수들이라는 점이다. 대학은 종종 학생들에게 대학원도 나오고 학위도 따 놓아야 좋다는 식으로 학력 사회를 조장하는 주동자이다. 그래야만 대학원에 손님이 모이기 때문인데 학력 거품이 심한 한국이기에 대학원들의 학위 장사는 잘 되는 편이며, 그러다 보니 한국의 10개 대학 중 9개소는 대학원을 운영한다. 똑 같은 학력 중시 사회인 일본만 하더라도 10개 중 3개소 정도만 대학원을 운영한다. 
취직이 목적이라면 어중간한 대학원에는 차라리 가지 않는 것이 좋으며 그런 곳에서 학위를 받는 것은 적어도 부자가 되는 데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물론 다녔던 바로 그 대학에서 강사 자리를 얻고 그 대학의 교수 자리를 얻는데는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지저분한 짓을 좀 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어중간한 대학원도 당사자가 이미 학력,학벌 위주 집단에 취업하여 일을 하고 있는 중이거나 혹은 공무원이 좀더 높은 자리로 승진하고자 할 때에는 도움이 된다. 반면에 전직을 하고자 대학원을 다닌다면 정말 최고로 유명한 곳에 젊었을 때 다니는 것이 좋다. 
경영자로서 경제적 측면만을 고려하여 볼 때 대학원은 이 사회에서 최고로 인정해주는 학교와 잘 팔리는 전공을 선택하여야 경제적 투자 가치가 높다. 예를 들어 한국에는 세계 100위 안에 들어가는 경영대학원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쟁쟁한 해외 유명 대학원 출신들이 더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은 정말 뻔할 뻔 자 아닌가. 해외 유명 경영 대학원은(지원자의 합격률이 20%도 안되는 유명 대학원이다!!) 분명 자신의 몸값을 올리는 기회가 된다. 
하지만 외국계 회사나 외국과 교류가 있는 기업에서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지만 해외교류가 없는 회사들에서는 국내 유명 경영대학원 출신이 오히려 환영을 받을 수 있다. 경기가 침체되면 미국 내에서도 와튼이건 하버드이건 스탠포드이건 간에 취직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졸업후 나이가 30대 중반을 넘게 된다면 취직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고 학비도 만만치 않으므로 유학으로 인해 잃게 되는 기회비용도 따져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경제적 뒷받침도 되고 나이도 많지 않고 공부도 아주 잘한다면 유학을 다녀와라. 공부도 신통치 않은데 기 쓰고 유학을 가려고 한다면 글쎄다…. ( 출신 대학이 일류대가 아니어서 대학원을 통해 학벌을 세탁하고자 한다면 나쁜 생각은 아니다. 학벌 사회에서 일단은 자존심을 회복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정말 유명한 대학원이 아니라면 경제적 대가는 크게 기대하지 말아라. ) 
일류 대학원을 나와 몸값을 올려 취업을 한 뒤부터는 경제적 부가가치를 어느 정도나 실제로 창출해내는가에 따라 후속적인 대우가 결정되며 이 과정에서 고배를 마시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즉 입사할 때에는 환영을 받았지만 1년도 못 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는 경우가 생각보다는 많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내가 지켜 본 경험으로는 회사에서 일을 잘 못하던 젊은 직원은 한국인이건 외국인이건 간에 경영 대학원을 다녀 와도 일의 수행 능력에는 별 진보가 없었다. 
국내이건 해외이건 어설픈 수준의 대학원은 학력 거품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내가 80년대에 고용하였던 기사 한명은 학력을 속이고 취업을 하였으나 알고 보니 대학원 졸업자였다. 이런 일들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노벨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 교수는 이미 1962년에 <자본주의와 자유>라는 저서에서 학력 거품을 경제력의 소모라고 비판했다고 한다. 
대학원 졸업자를 무조건 고급인력으로 보거나 사회의 두뇌로 여기는 태도는 정말 거품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대학원의 연구 결과들 모두가 궁극적으로 이 사회에 득이 되는 것도 아니다. 엉터리도 엄청 많다. 하지만 학교 먹물들은 오래 배운 사람들을 이 사회의 두뇌로 외치면서 대학원생들에게 연구비도 주어야 하고 일자리도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외친다. 일본,미국,유럽 등지에서는 대학원생들에게 연구비가 주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은 대학원이 어중이 떠중이 너무 많다. 포항공대 대학원 같은 곳은 대학원생 전원에게 장학금이 지급된다(하지만 들어가기가 힘들다. 거듭 강조하지만 대학원은 들어가기 힘든 곳에 다녀야 가치가 있다.). 
조지프 슘베터라는 학자는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취직을 못하여 사회 불만 세력으로 뭉치게 되면 자본주의 시스템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겁을 주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윤을 만들기 어려운 순수학문 분야를 자기가 좋아서 배웠다면 진로나 생계 문제 역시 본인 자신이 스스로 해결하여야 할 것 아닌가. 
한편 공부하는 것이 체질적으로 좋아서 교수가 되려고 하거나 또는 연구소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한국에서 대학원을 나온 뒤 외국 유명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얻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국의 대학은 기본적으로 학연 사회이기 때문에 대학원을 한국에서 나오지 않으면 이끌어 줄 교수가 없고 선후배 관계도 약하기 때문에 교수 자리 얻기가 만만치 않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일부 교수들은 대학원생들을 지독히 이용해 먹는다. 
게다가 박사 학위를 받아 대학 시간 강사가 되게 되면 월 평균소득은 40만원에 불과하다. 노동부의 직업분류에서는 '일용 잡급직 노동자'이다. 거의 모든 대학에서는 교수를 채용하여 강의를 맡기게 되면 적어도 월 400만원은 소요되는데 반해 강사는 싼 임금으로 부리다가 언제라도 해고할 수 있기 때문에 강사를 선호한다. 그나마 지원자가 많다 보니 임시직 시간 강사 자리에도 경쟁이 너무 치열하기에 연줄이 있어야 유리함을 명심해라. 귀화 러시아인 박노자가 쓴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책 한 부분에서 한국의 대학과 교수사회의 치부를 제3자의 눈으로 아주 잘 보여 준다( 세이노 같은 부자들은 별로 안 읽을 것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책인데, 공부를 오래 하려는 사람은 교수들에 대한 박노자의 글을 반드시 읽어라). 
어쨌든 박사학위는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나 투자 가치가 있을까  딱 잘라 말해서 큰 도움은 안 된다(그러나 실습을 무지 많이 하는 일류 공대 대학원은 지금이 들어가야 할 절호의 챤스라는 것도 알아 두어라. 승진이 무지 빠르게 이루어 질 것이다). 박사 학위가 있다고 돈 많이 주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원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웬만하면 박사코스를 밟으라고 말할 것이다. 박사 코스 손님이 많아야 자기에게 유리해지기 때문에 그런 권유를 하는 교수도 꽤 있음을 염두에 두어라. 아, 물론 박사 학위 하나로 행복해 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하라. 
그러나 박사 공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공부나 연구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부수적으로 얻는 것이 학위이어야지 학위 자체가 목표라면 잘못된 것이다. 박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구 소련의 과학자였던 콘스탄틴 에쿠아르도비치 치올코프스키(1857?1935)의 생애를 한번쯤 살펴 보아라. 가난하였던 그는 혼자서 공부하고 10대 시절부터 우주여행의 꿈을 키우며 병아리를 빠른 속도로 돌려 봄으로써 중력가속도가 생물에 미치는 영향을 밝히기도 하였고 다단 로켓의 이론도 마련하였다. 돈이 없다 보니 목수일과 대장장이일 까지 하면서 증기기관,풍차,펌프 등을 직접 만들어 연구에 사용하였다. 그의 논문들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기에 교사 일을 하거나 공상과학 소설을 집필하여 생계를 꾸려갔지만 아들은 자살하고, 홍수를 당하기도 하고, 딸은 반동으로 체포되는 등 불행의 연속이었다. 병상에 누워있던 나이 60에서야 그는 비로서 국가의 인정을 받았다. 대학원 박사 과정은 치올코프스키처럼 진짜 연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가라는 말이다. 
(나는 80년대에 미국에서 어느 정도는 알려져 있는 대학원의 박사 논문을 영문으로 써 주고 꽤 많은 돈을 챙긴 적이 있다. 언제나 내가 의뢰자들과 의논하여 잡은 논문 제목은  한국에서의 무엇 무엇에 대한 연구 였는데 미국에서 한국실정은 어차피 잘 모르는데다가 한국 내에서 얼마든지 기초 자료들을 구할 수 있고 대학원생들의 논문들도 손쉽게 찾아 볼 수 있기에 짜집기 하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2년 동안 5명의 고객을 얻었었는데 그 고객들 모두가 저명 인사들이고 나중에 교수가 된 사람도 있다. 당시 내가 가위로 논문을 짜집기 하는 것을 당신이 보았다면 아마도 기절초풍하였을 것이다. 불법 아니었느냐고  80년대에 사람들은 그런 것이 비즈니스가 된다는 것 조차 몰랐다. ) 
결론: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고, 남들보다 공부를 상대적으로  아주 잘하며 , 전공이  돈 버는 것 과 관련되어 있고, 나이가 많지 않다면 고학력을 추구한 대가를 경제적으로 얻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투자대가를 경제적으로 크게 기대하지는 말아라. 
무슨 일이든지 더 잘하는 방법이 있다  
군대에서 겪었던 일이다. 자대로 배치된 바로 그 날 저녁 일등병 고참이 내게 시킨 일은 내무반 바닥에 물을 뿌리고 비로 쓸라는 것이었다. 내무반은 시멘트 바닥이어서 먼지가 잘 일어났다. 나는 물바가지에 물을 받아 와 그 물을 손으로 뿌렸다. 물론 나는 졸병이었기에 잔뜩 긴장한 상태에서 한 대라도 덜 얻어 맞고자(70년대 초는 군대 내 구타가 여전히 남아 있었던 시절이다) 최선을 다해, 정말 최선을 다해, 물을 조심스럽게 뿌렸다. 하지만 물뿌리개로 골고루 한 것이 아니라 손으로 뿌린 것이기에 어떤 곳은 물 자국이 크게 생기고 어떤 곳은 물이 묻는 둥 마는 둥 하는 꼴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본 고참은 나를 화장실로 데리고 가 몇 대 쥐어 박은 후 물 뿌리는 법을 설명하였다. 그것은 손을 가볍게 움켜쥔 뒤 바가지 물 속에 담근 뒤 재빨리 꺼내면서 다섯 손가락을 빠르게 좍 벌리면서 물을 사방에 튀기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니 시멘트 바닥에 생기는 물 입자의 크기는 모두 쌀알 만하였다. 그것은 정말 물뿌리개로 물을 뿌린 것 보다도 더 입자가 고왔고 정말 예술이었다. 무슨 일이건 더 잘하는 방법이 있는 법이라는 것을 나는 군대에서 맞아가며 배웠다. 
사업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겪어 본 경험에 의하면 가장 골치 아픈 직원은 자기 기준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자기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하였다고 생각한다.("바보들은 항상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다"는 제목의 책이 출간되었을 때 나는 그 책 제목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 읽어 보았는데 적어도 내가 개인적으로 기대하였던 내용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원제는 Mastering Self-Leadership 이었는데 내가 보기에는 뜬구름 잡기였다. ) 하지만 기억해라. 당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방법이 실은 어리석음의 총체적 집합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일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 잘, 더 효율적으로, 더 완벽하게 일을 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통계에 의하면 사람들 중 90% 이상은 자신을 다른 보통 사람보다 일을 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미국 대학 교수들의 94%는 동료보다 자신이 연구를 더 잘 수행한다고 믿는다. 미국대학농구 선수들 중 60% 이상은 자기가 메이져 팀에서 뛸 것으로 믿지만 실제로는 5%만 그렇다. 일본 직장인들은 자신의 업무수행 능력을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평균 20% 이상 더 높게 생각한다. 즉 자기 도취에 빠져 있다. 
사람들이 내게 웬 책을 그렇게 읽느냐고 물을 때 마다 내가 준 대답은 "내가 경영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내가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내가 자기 도취에 빠진 것은 아닌지, 내가 똥 뭍은 개인데 겨 뭍은 개를 탓하기만 하는 건 아닌지, 내 눈 속의 들보는 못보고 남의 눈 속의 티눈만 보는 것은 아닌지, 내가 제대로 일을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것인지 등등이 불안 하다 보니 확인을 받으려고 읽는다"는 것이었다. 
자, 일을 좀 더 잘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첫째 어떤 일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면 반드시 개선점을 찾아 내라. 나는 같은 일이 수 개월 동안 계속 반복되게 되면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는 것일까 "를 생각하고 더 좋은 방법을 찾아 개선하려고 무지 무지 애를 쓴다. 그리고는 상당한 분야에서 변화를 시도한다. 집에서도 나는 오만가지 물건들로 가득 찬 내 방을 정기적으로 정리하고 사물들을 새롭게 배치한다. 개선을 찾는 것이다. 
둘째 행동하기 전에 그 일에 필요한 지식을 반드시 흡수하여라. 전혀 모르는 분야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 관련 지식을 공부하라. 섣불리 전문가라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지 마라. 반드시 관련 법규들을 찾아 공부하는 것도 잊지 마라. 법을 미리 확인하지 않아 낭패를 보는 사람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라면 하나도 제대로 끓이려면 설명서를 읽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라. 
셋째 실수하지 말아라. 중국 음식점에 짜장면을 시켰는데 배달원이 단무지나 젓가락을 안 가져 오는 경우를 한 두 번은 경험하였을 것이다. 당신이 배달한다면 전혀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글쎄다. "사람의 발이 밟는 땅은 불과 몇 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한 자가 넘는 다리에서도 잘 떨어진다."('안씨가훈'에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실수는 자만에서 나온다. 실수하지 않으려면 어떤 일을 하는데 필요한 (하지만 당신이 익히 알고 있다고 믿는) 모든 세세한 것들을 적어놓은 체크 리스트를 반드시 만들어 책상 위에 붙여 놓고 그 일을 할 때 마다 확인하라. 그 리스트가 머리 속에서 스크린에 투영되듯 눈을 감아도 좍 비쳐질 때 까지 그렇게 하라. 일을 못하는 사람일수록 이런 리스트를 불필요하게 생각한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만에 빠져 있다는 말이다. 
넷째 효율적으로 일해라. 어제 밤 10시까지 일했다고  이번 달 영업실적 통계 내느라고 그랬다고  그런데 통계를 어떻게 냈지  꼼꼼히 세금계산서들을 업체별로 분류한 뒤 합산하여 워드 프로세서로 만들었다고  합산은 어떻게 했는데  계산기로 했다고  그럼 이 도표는 어떻게 그렸지  워드로 만들었다고  액셀은 사용할 줄 모르나  알긴 아는데 잘 모른다고  이거 액셀로 하면 어제 일과 전에 끝나는 일인데  효율성은 언제나 당신의 지식과 비례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하긴 회사에서 높은 사람이 남아 있으면 퇴근을 못하는 직장이 허다한 상황에서 효율적으로 일하고 난 뒤 게임이나 하는 것 보다는 열심히 계산기라도 두드리는 것이 더 이뻐 보일지도 모르겠다.) 
다섯째 그 일을 이미 해 본 경험자들의 의견을 반드시 들어라. 직장인들이 상사를 잘 만나는 것은 정말 행운에 속한다. 나는 경력사원을 뽑을 때 그가 예전 직장에서 누구 밑에서 일을 배웠는지, 그 상사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반드시 묻는다. 무역 서류를 담당할 경력 직원이라면 그가 작성한 영문 문서들을 예전 직장에서 누가 살펴보았었는지도 확인한다. 혼자서 전권을 위임 받았었다면 그는 배운 것이 없으니 보나마나 일을 잘 할 리가 없다. 상사가 있었지만 별볼일 없었다면 그 역시 별볼일 없다. 그러므로 당신의 상사가 당신에게 일 좀 똑바로 하라고 할 때 마다 고마움을 느껴라. 그가 큰 소리로 악악 거린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훌륭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과의 사이는 불과 한 발자국의 차이다." 나폴레옹의 말이다. 
하지만 일 잘하는 사람과 어리석게 일하는 사람 차이는 한 발자국이 아니다. 그것은 부자가 될 사람과 가난하게 살 사람의 차이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 
1. 나는 공장자동화 시스템에 대하여 전혀 몰랐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관련 분야를 알아야 할 필요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럴 때 대개 사람들은 전문집단에게 맡기려고 하지만 나는 내가 먼저 이해하기 전 까지는 하청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시스템들은 구매하기 전에는 내가 계약서 상  갑 이 되지만, 일단 구매 설치한 뒤에는 기술적으로 그 업체에 완전 종속되어 실제로는  을 의 위치로 바뀐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엔지니어들은 실제 소요치 보다 오버 디자인된 제안을 하기 쉽기 때문에 불필요한 고가 장비가 장착되기 쉽다. 자, 나는 이 공장 자동화 시스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여 왔을까  
먼저 공장자동화 관련 잡지들을 구독하기 시작했다. 전자신문은 이미 10년 넘게 구독하여 왔다. 잡지나 신문에 실린 광고를 보고 업체에 전화를 하여 이것저것 물어도 보았다. 자동화종합전시회도 구경하고 참가업체들을 귀찮게 하면서 카달로그들도 모았다. 구로동 공구상가는 물론 용산전자상가 지하 1층에도 직접 기웃거렸다. 이상의 일들을 나는 지난 6개월 간 간간히 하여 왔었다. 그리고 지난 6일 간 집중적으로 나는 축적된 자료들을 본격적으로 검토하는 한편 인터넷 검색에 매달리며 지식을 총정리 하여 나갔다. 나는 내일 아침 지방으로 출장을 갈 예정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 있게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가장 저렴한 방식이 무엇이며 어떻게 일을 시작하여야 하는지를 말할 수 있다는 말이다. 
2. 나는 일간지들은 물론 경제지들도 보고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전자신문 같은 전문지도 보아왔다. 때로는 지방지들을 보기도 하는데 이를 테면 제주도에서 뭔가 돈벌이가 보이게 되면 제주도에서 발행되는 지방지들을 구독하는 식이다. 가장 신문을 많이 보았던 시절에는 30개가 넘는 신문들을 보기도 했다. 외국신문을 보기도 하지만 상세히 보는 편은 아니고 관심 있는 부분만 보게 된다.( 어떤 새로운 일을 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그 분야에서 발행되는 잡지와 신문을 모두 찾아내 6개월 이전부터 구독하라. 돈이 없으면 물론 도서관에 가라. 헌책방에서 잡지의 과월호를 1년치 사서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과월호를 사는 것은 내가 아주 즐겨 쓰는 방법이다. 예전에 3륜 용달차가 있었던 때 나는 헌 잡지들을 2대 분량이나 산 적도 있다. ) 

부자가 되려면 학교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가   

예전에 미국 경제 잡지 포브스가 발표한 내용을 보면 세계 4백대 거부 가운데 58명은 대학을 가지 않았거나 중퇴했다. 그러나 이들의 재력은 평균 48억달러로 전체 평균 18억 보다 훨씬 더 많았으며, 미국 동부의 사립 명문대 아이비 리그 출신자들 보다 평균 2배 더 많았다. 즉 학력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돈은 더 많이 벌었다는 말이다. 실제로 유명한 자수성가형 부자들을 보면 학력이 좋은 사람이 드물다. 국내재벌 1세들도 그렇다. 
재미있는 것은 학력(어느 수준까지 공부했는가를 말한다)과 학벌(일류대냐 이류대냐를 따진다)이 화려한 사람들이 들어가고자 애쓰는 회사들이 대부분 학력이 짧은 사람들이 만든 회사라는 점이다. 이 사실은 부자가 되려면 학교 공부를 하지 말라는 뜻일까  헛소리 하지 말아라. 특출한 능력과 노력이 따로 없는 한 학교공부를 너무 안 하면 아예 기회가 박탈되어 실업자가 될 가능성이 확률적으로는 더 높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에디슨은 학교 무용론을 직접 실천하고자 자기 아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는데 그 아들은 나중에 사기꾼이 되어 감옥살이도 하였고 평생 비참하게 살았다.) 먼저 알아 두어야 할 것은 학교와 관련된 몇 가지 거짓말들이다. 첫번째 거짓말은  공부 잘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 는 말이다. 진실은, 인격의 깊이와 지식의 양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부를 잘한 덕분에 어떤 전문 직업을 가졌다고 해서 도덕적으로 모범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교양인이 되었다는 것도 결코 아니다. 농경시대에는 교육의 목적이 인간형성에 있었고 때문에 가르치는 자는  스승 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학교 공부는 인격함양을 위한 도구가 아니며 그저 지식일 뿐이고 배우고 나서 몇 년도 못 가 다 잊어버릴 것들이 태반이며 가르치는 자는 직업인으로서의 교사일 뿐이다. 
두번째 거짓말은  선생님을 존경하라 는 말이다. 고졸자들은 보통 초중고 12년 동안 70-100 명 정도의 교사를 만나게 되는데 고3 학생 1,084명에게 존경하는 교사가 몇 명이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46.5%는 1~2명, 34.7%는 3~4명 , 8.1%는 5~6명, 7.6%는 없다고 대답했다는 통계가 있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내 딸들이 존경할 만한 교사를 만날 확률은 10% 도 안된다는 뜻이다. 나는 실제로 내 딸들에게  학교 선생님 말씀 잘 들으라 고 한 적도 없고  선생님을 존경하라 는 말도 전혀 한 적 없다. 오히려 교사들 중에는 형편 없는 년놈들이 더 많으며, 운이 아주 좋아야 존경할만한 스승을 만나게 된다고 말해왔다. 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아직도 정말 웃기는 년놈들이  선생님  행세를 하는 게 부지기수다.( 그래서 나는 교사평가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으며 그 평가에는 학생들이나 졸업생들이 반드시 참여하여야 한다고 믿는다). 
어쨌든 부모들이 자녀에게 공부하라고 득달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일반적인 봉급 생활자 보다 돈을 더 잘 버는 전문직업을 가지려면 갖가지 자격 시험을 잘 치뤄야 하므로 공부를 잘해야 하고 좋다는 직장 역시 좋은 학교를 나와야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학교 공부 자체를 잘한다고 해서 또는 오래 공부하였다고 해서 경제적 수입이 언제나 정비례하게 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고학력자들이 종종 그런 오해에 빠져 있다). 가르치는 일이나 연구로 밥 먹고 사는 선생, 교수, 연구원 같은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학교 공부 자체는 돈을 버는 게임을 수행하는데 있어 어느 정도나 관계가 있는가. 순전히 내 개인적 생각이지만 고등학교까지의 교과 과목들에 대한 나의 평가는 아래와 같다. 
국어- 논리력,발표력,글쓰기 등을 개발하는데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다른 과목들도 그렇지만 학자가 되는데나 필요한 내용들도 많다.  강남 갔다 돌아온 제비 를 무조건  조국의 광복 으로 외워야 하는 교육은 거지 발싸개 보다도 더 못하다. 
수학- 논리력을 키워주지만 1차 방정식과 간단한 기하 지식 정도 이외에는 돈 버는 게임과 별 관련이 없다. 연관 과목의 학자나 엔지니어가 될 지극히 일부 학생들을 제외하면, 고교 때 열심히 공부한 <수학의 정석> 시리즈는 삶 속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영어- 못하면 돈 벌 기회가 많이 줄어들며 해외 여행도 단체관광으로만 다니게 된다. 하지만 영어를 가르칠 만한 자격을 가진 교사의 수는 아주 한정되어 있다. 대부분은  무조건 외워라 고 가르치며, 자기 돈으로 자기 실력을 늘리려기 보다는 국가에서 교육을 시켜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교사들도 있다. 제2 외국어-영어 보다는 그 기회의 폭이 적다. 
과학- 실험을 많이 한다면 과학적 사고를 증가시키는데 도움이 되지만 그 분야에 종사할 사람들 이외에는 큰 도움이 안된다. 그러나 전기,전자,물리,화학에 대한 기초지식은 쓸모가 종종 있다. 하지만 어느 중학교의 닭대가리 과학 교사는 학생들에게 교과서 단원 목차만 4시간 동안 외우게 한다(내 딸이 겪었다). 국사- 한국인 혹은 애국자가 되는데 필요할 수도 있다. 세부적인 내용들은 졸업 후 다 잊어버릴 것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외워야 점수가 나온다. 
세계사- 역사는 결국 경제적 이득을 위한 투쟁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배우게 된다. 역사가 어떻게 흘러 왔는지를 배우면 좋지만 시시콜콜 외워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도덕,윤리- 이런 것은 배웠다고 해서 자동 실행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것 역시 암기할 것들이 많지만 곧 다 잊어 버리고 말 것들이다. 
미술, 음악, 체육- 어느 미술교사는 자기가 가르쳐 준 방식 대로 그리지 않으면 점수를 주지 않는다. 어느 음악선생은 이론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그것을 외우게 하는데 귀신이다. 어느 체육선생은 비오는 날이면 학생들에게 필기를 엄청 시킨다. 나는 그런 교사들의 머리(아니, 대가리라는 표현이 더 맞다) 속을 해부해 그 안에 뭐가 있는지 보고 싶다. 
교장, 교감, 교육감 등등- 이 사회가 얼마나 위선적인지를 배울 수도 있다. 
나는 고교 졸업 후 몇 년도 못 가 잊어 버릴 내용들은 배울 필요가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하물며 1년도 못 가 까맣게 잊어 버릴 내용들을  기초 학력의 증대 니 "국민교양의 토대"니 하는 명분으로 강제로 가르치는 정책은 정말 쓰레기통에 쳐 박아야 한다고 믿는다. 배운 사람이나 안 배운 사람이나 1년 후에는 똑 같은 상태를 보일 텐데 그걸 가르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 어느 나라 교육계에도 기득권층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과목을 고교 과정에서 학생들이 임의로 선택하는 과목으로 선정하려고 할 때 가장 반대가 심한 집단은 당연히 그 과목을 전공한 학자들이거나 교수들일 것이다. 당연히 그들은 그 과목이야 말로 학문의 기초이며 고교생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과목이라고 침을 튀기며 강조할 것이다. 마치 그것을 안 배우면 삶의 질은 물론 국민의 교양이 떨어지게 되는 양 말이다. 결국 그 기득권자들의 입김에 그 과목은 고교과정에서 여전히 강제적으로 배워야 하는 필수 과목으로 남게 된다. 
내가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고교과정에서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대부분의 과목들은 그 과목과 관련된 분야로 진출하지 않을 99.99 퍼센트의 학생들에게는 그 10분의 1만 배워도 충분한 내용들이다. 즉 0.01퍼센트 미만의 학생들이 그 과목을 전공하게 되고 바로 그 극소수를 가려내고자 기득권자들은 자기 밥그릇이 적어지기 때문인지 모든 학생이 그것을 배워야 한다고 입에 게거품을 문다. 
실례를 들어 보자. 교육인적자원부의 제7차교육과정은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덜어주고 원하는 과목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도록 하는 대한민국 교육제도상 가장 훌륭한 것이지만 2001년 6월 1903개 중고교 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중학교사의 76.9%, 고교교사의 84.8%는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고 했고 16.5%(중), 15.7%(고)는 폐지를 주장했다. 심지어 전교조 교사 만 여명은 반대투쟁까지 벌였는데 그들의 반대이유는  현장 실정을 무시했으며 교직의 미래를 불안하게 한다 는 것이었다.  학생들에게 불리한 제도이기 때문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 입장에서 불리하기 때문에 반대하였다는 말이다. 이게 대다수 교사들이다. 
그렇다면 대학은 어떨까  한국에서  졸업후 경제적 대가를 받는 직업을 가지려는 사람들 에게 대학에서의 전공과목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것을 배우지 않은 사람들 보다는 조금 낫지만 대부분은 졸업 후 사회에서 새로 배워야 한다. 왜 이런 일이 생겨나는 것일까. 전체 교수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교수들이 공부는 하지 않고 구시대적 권위에 사로 잡혀 낡은 강의록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면서 뜬구름 잡는  차원 높은 소리 (이를테면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여야 한다는 등의 듣기 좋은 말)에나 능하고, 갖가지 연구기금에 침을 흘리지만 정작 연구는 대학원생들을 부려 먹으며 짜집기 연구결과 발표에 능숙하고, 그 결과 사회에서 요구하는 수준도 모르는 무능력한(그러나 스스로를 엘리트라고 생각하는) 고학력자들만 길러내는 주범들이기 때문이다(대학에서의 전공에 대하여서는 별도 항목을 참조하라). 
[잠시 옆길로 나가자. 대학에 대한 나의 혹평에 대하여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대학은 출세지향주의를 가르치는 비인격적인 장소가 아니라 인간을 기르는 곳이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냉혹한 적자생존의 사회논리에 맞춰 싸울 수 있는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곳도 아니고 이 사회에서 혼자 잘 먹고 잘사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도 아니다. 직장인을 길러내는 학원도 아니다. 학교는 홍익인간의 이념을 바탕으로 공동체 정신과 교양을 길러주는 곳이다. 또한 순수학문을 시장논리로 평가하면 안되며 특히 대학원은 돈을 더 벌려고 가는 곳이 아니다. 학문을 향한 열정을 바치고자 가는 곳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 나는 이렇게 반박하고 싶어진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고 있네. 대학을 안 나오면 인간이 되지 못하나 보지  인간이 되고자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이 한명이라도 있다면 내게 데리고 와라. 너 직업이 교수지  언제나 실력 없는 교수들이 그런 말을 그림같이 늘어 논다는 것을 내가 안다. 학교에서 인간을 길러  대학이 무슨 청학동 서당이냐  학연과 연줄로 줄줄이 엮여 있는 그 집단에서 인간을 길러  연구비 한푼이라도 더 타다가 연구는 뒷전으로 미루고 자기 호주머니에 집어 넣으려는 놈들이 뻔히 있는데  학문을 향한 열정  아이구 장하다. 그래서 우리나라 대학들이 세계적으로 수준이 그렇게 열등한거냐  한번 강단에 발을 넣으면 99%가 그 교수직을 평생 유지하는 해병대 논리를 고수하여 왔던 집단이 무슨 홍익인간이니 개소리냐. 순수학문을 시장논리로 평가하면 안 된다고  맞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기억해라. 허버트 스펜서는 19세기 말 영국의 인문주의 교육을  장식 교육 이라고 통열히 비판하였었다는 사실과 네가 순수학문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이 그 시대의 인문주의 교육이나 별 다를 게 없다는 것을 말이다. 
어쨌든 간에 너는 순수한 열정으로 학문을 택했다며  돈은 바라지 않은 것이었다며  잘 먹고 잘 살자고 공부한 것은 아니라며  그런데 왜 대학에 돈이 없어서 연구가 안 된다는 거니  연구를 하려면 돈은 필요하다며  돈  그 돈 대부분은 세금 혜택까지 누리면서 너희들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는 것 아니냐. 결국 연구를 더 해야 하는데 돈을 안주니까 안 한다는 말 밖에 더 되냐. 손님이 많아야 너희 지위가 안정되니까 이 사회에서 별 의미도 없는 대학원으로 학생들을 꼬드기고 학점과 논문통과를 무기로 학생들을 노예처럼 부리는 집단 역시 너희 아니냐. 일부만 그렇다고  정말    사족: 나는 고려대 같은 학교에서 실시하는 교수평가제도를 아주 좋은 제도라고 믿는다.] 
교육계에 대한 내 불만은 이쯤에서 그치자. 오해하지 말라. 학교교육에 그 어떤 문제가 있다 할 지라도  공부를 대단히 잘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름대로 성공과 부를 잡을 수 있는 길이 분명히 존재한다. 아니 부자가 되지는 못할 수 있어도 적어도 가난에서 분명하게 탈출할 수는 있다. 
첫째, 이 사회로부터 기회를 얻느냐 못얻느냐 하는 갈림길이 일단은 학력과 학벌에 의하여 결정되기 때문이다. 일을 배워 독립을 하려면 어떤 조직이나 정보공유집단 속에 우선은 들어가야 하는데 너무 학력이 없으면 그 문턱에 접근 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초등학교만 나온 사람이 고생 끝에 거대한 전기회사를 설립하였고 사원모집 광고를 냈다. 어떤 사람이 그 역시 초등학교만 나왔지만 사장 역시 초등학교만 나왔다는 사실에 용기를 얻어 그 회사에 입사 지원 원서를 냈다. 하지만 서류에서 불합격 처리되었다. 이에 화가 난 그는 회사 사장을 방문하여 항의하였다.  저는 초등학교만 나왔습니다. 사장님도 그렇지 않습니까   사장은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초등학교만 나온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사람의 능력이 학력과 비례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에게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당신이 에디슨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고 기다릴 시간이 나에게는 없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하여 결국 우리는 일차적으로 검증된 사람을 채용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전 세계 어디서나 일류 대학을 나오면 이른 바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다. 기득권 사회에서 학벌을 중시하는 이유는 그것 말고는 일을 잘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판가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학교교육을 무시한다면 사회로부터 일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확률적으로는 실업자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나 명심하여라.  학교에서 뭔가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무식해서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이 절대 아니고  학벌과 학력 이외에는 달리 사람을 판가름할 만한 방법이 없다 보니  기회를 놓치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한때 여러 회사들에서 신입사원을 능력만 보고 채용을 하겠노라고 선언하였지만 도대체 그 능력이란 것은 일을 시켜 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기에 결국은 다시 학력과 학벌을 보는 쪽으로 되돌아갔다는 점도 기억하여라. 
둘째,  일류대  졸업자가 되면 일단은 고졸자보다 인건비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예를 들어 보자. 막노동꾼이었던 장승수. 그는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일찌감치 대학을 포기하고 술집과 당구장을 오토바이로 누비며 싸움꾼으로 고교시절을 보냈다. 키 160센티미터, 몸무게 52㎏의 왜소한 체격으로 포크레인 조수, 오락실 홀맨, 가스와 물수건 배달, 택시 기사, 공사장 막노동꾼 등,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하면서 대학에 수 차례 도전하였으나 계속 실패하다가 결국 IQ 113의 보통 머리와 내신 5등급의 낮은 성적으로 서울대학에 수석으로 들어갔다. 오래 전 그가 쓴 책 제목이 <공부가 가장 쉬었어요>(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읽어라)이다. 지금은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사법 고시에 합격하였다고 하므로 그가 적어도 예전보다는 많은 보수를 받는 일을 할 기회를 쥐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미국에서도 매사추세츠공과대(MIT) 프랭크 레비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25~34세의 남성 노동자 중 대졸자와 고졸자간 소득격차는 98년 50%로 벌어졌다. 기업과 공장이 자동화되면서 오히려 대졸자 선호 현상이 20년 전의 20%에서 30%에 가깝도록 늘어나고 있다( 단 여기서 명심하여야 할 것이 있다. 여기서 언급된 대졸자들은 일류대 졸업자들이다.) 
셋째, 학력이나 학벌이 좋으면 능력 마저 뻥튀기 시킬 수도 있다. 예컨대 수 년 전 어느 고교 졸업자가 화려한 학벌과 경력의 경제분석전문가로 위장하여 책도 몇 권 쓰고 TV에도 등장하고 재벌 회장들에게 정기 브리핑까지 하면서 유명인사가 되었으나 모 기업체에 스카우트되는 과정에서 우연히 학력이 들통난 사건이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몇 년 동안 그의 주변에 호화로운 학벌과 학력 소지자들이 즐비하였건만 아무도 그의 말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게 세상이다. 능력이 있어도 학벌이나 학력이 없으면 인정 받기 힘들며 능력이 없어도 학벌이나 학력이 있으면 일단은 숨을 수 있다. 
넷째, 학력과 학벌이 좋으면 인맥 형성이 손쉽다. 기업체에서 원하는 사람은 수익을 창출해 내는 사람이고 문제 발생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의 소지자이다. 학벌이 좋으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였을 경우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기가 쉽다. 이것은 사업이나 장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미래 지도자 양성을 교육이념으로 삼고 있는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신입생을 뽑을 때 지역과 인종을 고려하는 이유 역시 학생들이 서로의 다양성을 배우고 졸업 후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즉 휴먼 네트워크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게 되는 것이다. 
특히 고등학교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 어떤 이득을 위한 친구관계가 아니라 말 그대로 우정이 형성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세월이 흐른 뒤 만나도 거리낌이 없다. 제 아무리 지위가 높은 친구라 할지라도 고교 동창이라면 전화를 걸 수가 있고 찾아가 만날 수가 있다. 대학 동창들은 전공이 비슷하다 보니 사회 진출 이후 교제의 폭이 넓지 못하다.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건 학부모들이 자녀를 일류 중고등학교에 보내려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나오게 되면 한국에서의 인맥은 아주 약하게 된다. 
빌 게이츠가 Mt.Whitney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연설한 것으로 잘못 알려진 인생의 법칙11가지 법칙 중 마지막 법칙,  공부만 하는 바보한테 잘 대해라.. 나중에 그 바보밑에서 일하게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라는 말은 그래서 진리이다.[ 아래에 인생의 법칙 원문을 실어 놓았다.] 
다섯째, 공부를 잘한 사람들은 그들이 배웠던 것들이 쓸모가 있건 없건 간에 일단은 적어도 학습 능력만큼은 인정 받는다. 학벌과 학력이 화려하면 집단 내에서 지위를 획득하는데도 유리하다. 내 경영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하버드나 스탠포드 출신의 경영학석사(MBA)들은 정말 똑똑했다. 그들이 좋은 학교에서 배웠기에 똑똑해졌다는 말은 아니다. 똑똑했기에 좋은 학교에 갈 수 있었고 바로 그 사실 때문에 학벌이 사람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기억해라, 일자리를 주는 집단에서의 일차적 잣대는 학력과 학벌이다. 가난에서 탈출하여 경제적으로 잘 살고 싶고 "공부에 소질이 있으면" 반드시 일류대에 들어가  돈과 관련된 분야 를 공부하고 "환경이 허락한다면 공부를 더욱 더 오래 많이 해서" 그 분야에서 최고의 학력과 학벌을 갖추어라. 
이 사회에서 학력과 학벌로 최고의 대우를 받으려면 공부에 있어서 반드시 극상위층에 속하여야 한다. 그 계층에 속하여 파워 엘리트가 되어라. 그렇게 한다면 연봉을 남들 보다 몇 배 이상 받을 수 있는 길이 분명 존재한다. 전문직업인이 되려는 사람들 역시 공부를 잘해서 좋은 학력과 학벌을 갖는 것이 일단은 유리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그렇지만 명심해라. 좋은 학력과 학벌을 갖고 있다는 것은  첫 출발점에서 폼 나게 설 수 있으며 가난에서 쉽게 탈출할 수 있다 는 뜻이지 자동으로 부자가 되는 길이 열리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왜냐하면 그 출발점에는 비슷한 학력과 학벌 소지자들이 다 같이 경쟁자로 서 있기 때문이다. 
( 당신이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결코 없으며 창피해 할 필요도 없다. 우선은 내가 위에서 고등학교까지의 교과목 들에 대하여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다시 한번 살펴 보아라. 내가 말한 정도만 알고 있어도 살아가는 데는 아무 지장 없으며, 학벌이나 학력 이외의 방법으로 부자가 되는 데 역시 전혀 어려움이 없다.  천재 앞에서 주눅들지 말라  항목을 다시 읽고  전공은 실전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 ,  학력이나 학벌이 빈약한 경우 어떻게 하여야 하나  등등의 모든 항목을 참조하라.) 
------------------------------------------------------------------------------------ 
빌 게이츠가 말했다고 잘 못 알려져 있는 인생의 11가지 법칙은 본래, 미국 애들이 쥐뿔도 모르면서도 자기 잘났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교육학적으로 고찰한 DUMBING DOWN OUR KIDS(우리 아이들 바보 만들기)의 저자 CHARLSE J. SYKES 가 신문에 투고한 글에서 한 말이라고 하며 본래는 14가지 법칙이고 아래 원문을 읽어야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다. 그의 책에서는 이 법칙이 나오지는 않지만 사명감 있는 교사라면, 혹은 미국계 기업에서 높은 자리에 있다면, 원서를 읽어보라. 나는, 자신이 미국인이기 때문에 모든 유색 인종 보다 더 똑똑하다고 믿는 웃기는 양놈들 때문에 이 책을 읽었는데 좀 지루하다. ). 
Rule No. 1: Life is not fair. Get used to it. The average teen-ager uses the phrase "It's not fair" 8.6 times a day. You got it from your parents, who said it so often you decided they must be the most idealistic generation ever. When they started hearing it from their own kids, they realized Rule No. 1. 
Rule No. 2: The real world won't care as much about your self-esteem as much as your school does. It'll expect you to accomplish something before you feel good about yourself. This may come as a shock. Usually, when inflated self-esteem meets reality, kids complain that it's not fair. (See Rule No. 1) 
Rule No. 3: Sorry, you won't make $40,000 a year right out of high school. And you won't be a vice president or have a car phone either. You may even have to wear a uniform that doesn't have a Gap label. 
Rule No. 4: If you think your teacher is tough, wait 'til you get a boss. He doesn't have tenure, so he tends to be a bit edgier. When you screw up, he's not going to ask you how you feel about it. 
Rule No. 5: Flipping burgers is not beneath your dignity. Your grandparents had a different word for burger flipping. They called it opportunity. They weren't embarrassed making minimum wage either. They would have been embarrassed to sit around talking about Kurt Cobain all weekend. 
Rule No. 6: It's not your parents' fault. If you screw up, you are responsible. This is the flip side of "It's my life," and "You're not the boss of me," and other eloquent proclamations of your generation. When you turn 18, it's on your dime. Don't whine about it, or you'll sound like a baby boomer. 
Rule No. 7: Before you were born your parents weren't as boring as they are now. They got that way paying your bills, cleaning up your room and listening to you tell them how idealistic you are. And by the way, before you save the rain forest from the blood-sucking parasites of your parents' generation, try delousing the closet in your bedroom. 
Rule No. 8: Your school may have done away with winners and losers. Life hasn't. In some schools, they'll give you as many times as you want to get the right answer. Failing grades have been abolished and class valedictorians scrapped, lest anyone's feelings be hurt. Effort is as important as results. This, of course, bears not the slightest resemblance to anything in real life. (See Rule No. 1, Rule No. 2 and Rule No. 4.) 
Rule No. 9: Life is not divided into semesters, and you don't get summers off. Not even Easter break. They expect you to show up every day. For eight hours. And you don't get a new life every 10 weeks. It just goes on and on. While we're at it, very few jobs are interested in fostering your self-expression or helping you find yourself. Fewer still lead to self-realization. (See Rule No. 1 and Rule No. 2.) 
Rule No. 10: Television is not real life. Your life is not a sitcom. Your problems will not all be solved in 30 minutes, minus time for commercials. In real life, people actually have to leave the coffee shop to go to jobs. Your friends will not be as perky or pliable as Jennifer Aniston. 
Rule No. 11: Be nice to nerds. You may end up working for them. We all could. 
Rule No. 12: Smoking does not make you look cool. It makes you look moronic. Next time you're out cruising, watch an 11-year-old with a butt in his mouth. That's what you look like to anyone over 20. Ditto for "expressing yourself" with purple hair and/or pierced body parts. 
Rule No. 13: You are not immortal. (See Rule No. 12.) If you are under the impression that living fast, dying young and leaving a beautiful corpse is romantic, you obviously haven't seen one of your peers at room temperature lately. 
Rule No. 14: Enjoy this while you can. Sure parents are a pain, school's a bother, and life is depressing. But someday you'll realize how wonderful it was to be a kid. Maybe you should start now. You're welcome. 

누가 나 대신 번역 좀 해서 올려 주었으면 … 


Posted by 인생&조이





있는 놈들은 돈을 어디에 얼마나 펑펑 쓸까    

사람들은 흔히  있는 놈들은 돈을 펑펑 쓴다 고 믿는다. 하지만 그저 일하는 것이 취미이거나 그저 돈 모으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인 부자들 중에는 만원 한 장 쓰는데도 바들바들 떠는 사람들도 있다. 과연 한국에서 최고 부자들은 돈을 어디에 얼마나  펑펑  쓸 수 있을까  
우선 최고급 주택을 구입하는 데는 얼마나 들까  2004년도 발표 국세청 기준시가가 강남구 도곡동 타워 팰리스의 가장 큰 100평형대 보다도 더 비싼 강남의 힐데스하임 , 트라움하우스 같은 160평형 대 이상의 공동주택 내부시설은 특급호텔 수준 정도이지만, 적어도 내 기준으로 볼 때는, 언론에서 보도 되듯이 요란 뻑쩍찌근한 곳은 전혀 아니다( 내가 그 중 한 곳을 두 차례 가보기도 했었고 경매로 나온 적도 있기에 구입도 생각했었으나 음악을 크게 듣기에는 전혀 적절하지 않아 그만 두었다 ). 강남의 유명 주상복합 아파트의 펜트 하우스들은 전망이야 좋지만 천정 높이가 아파트 수준 정도 밖에는 안 되서 내가 보기에는 답답했고 환기도 신통치 않아 나 같은 흡연자에게는 그저 그럴 것이지만 어쨌든 최고 좋다는 아파트들의 가격은 40억원 대이다( 나 같으면 그 돈으로 수 년 후 외환자유화가 완전히 이루어 진 뒤 뉴욕 맨하탄에 투자하겠다. 참고로 나는 부동산 투기는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아파트 청약이라고는 하지도 않았었고 관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파트나 주택은 한 채 이상 가져 본 적이 없다가 2000년도에 주상복합 아파트 하나를 경매로 사서 전세를 놓았고 2005년도가 되면 주택이 하나 더 늘 예정이다. 오피스텔이니 뭐니 하는 것은 가져 본 적도 없고 구입한 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동산 부분에서만 100억원이 훨씬 넘는 돈을 벌었는데 대부분 경매로 번 돈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경매에 참여한 것이 부동산 투기는 아니지 않는가. 
아 참. 욕먹을 짓을 한번 한 적이 있다. 용인에 농지를 샀던 적이 있는데 도대체 주민등록을 위장 전입하고 농민 흉내를 내지 않으면 합법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등기를 하지 못한 채 고민고민 하다가 위장전입 하는 것이 내키지 않아서 그냥 팔아버렸는데 이게 이른 바 미등기 전매이다. 양도소득세를 안 냈으니까 말이다. 너무 욕하지는 말아라. 그 대신 안내도 될 세금을 더 많이 말없이 냈으니까 말이다. ) 
서울에서 내가 직접 가 보았던 최고급 단독 주택은 시가 100억원이 넘었지만 지금은 빌라를 짓고 있고, 몇몇 재벌 회장들의 주택은 40억원에서 70억원 내외이다. 벤츠 Maybach 자동차는 수입을 한다면8~10 억원대 수준이지만 자동차 구입비는 회사에서 처리하고 그 뒤 몇 년간 감가상각으로 처리하거나 리스로 구입하여 그 경비를 비용으로 처리하면 된다. 최고급 골프장 회원권은 5-6억원 수준이지만 이것도 법인에서 처리할 수 있다. 최고급별장은 20~30억원 수준이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이것을 법인에서 처리하려면 법을 위반하여야 한다. 가족 생활비는 어느 정도나 들까  1년에 몇 억 정도면 뒤집어 쓰지 않을까  자, 또 뭐가 필요할까  ( SK 그룹의 고 최종현 회장이 예전에  한국에서 재산이 50억원 넘게 되면 사는 모습이 다 비슷해 진다 고 말했다고 하는데 부동산 가격 상승을 반영하여 지금 가치로 계산하면 100억원 정도 될 것 같고 내가 생각해 보아도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여기서 생활비나 자동차를 제외한다면  있는 놈들이 돈을 펑펑 쓰는  일차적 대상은 부동산이나 회원권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기 바란다. 그것들은 소비라기 보다는 투자의 대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있는 놈들"이 경제적 투자가 아닌 목적에서 개인 돈을  펑펑 쓰는 소비적 분야는 아마도 자기 취미 생활일 것이다. 골프에 미치면 몇 천만원 짜리 골프채 세트를 사고, 난에 미치면 난 한 촉에 천만원도 주고, 젊은 여자에 미치면 집도 사주며 음악을 좋아하면 나처럼 억 이상을 오디오 시스템에 꼬나 박고 그러는 것이다. 
젊은 여자 좋아하는 것은 취미 생활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내 주변의 백만장자들(한국에서는100억원대에서 1,000억원대)을 살펴 보면, 어릴 때부터 풍족하게 살았고 많은 재산을 물려 받은 갑부 2세들이 이쪽에 밝다. 예를 들어 내가 아는 51세의 어느 갑부 2세는 아직도 여자 2명에게 따로 살림을 차려주고 요일마다 찾아가는 여자가 틀리다. 정력도 좋아… 하지만 내가 아는 어느 50대의 갑부 2세는 근검절약으로 살아오신 아버지의 영향으로 철저히 절약하며 사는 데 내가 종종 그에게 하는 말이  자식 좋은 일만 시키지 말고 돈 좀 써라  이다. 
국내 어느 유명 재벌 2세는 여러 대의 최고급 스포츠카들을 갖고 있는데 모두 관계 회사의 자산이며 내가 어림짐작으로 계산하여 보아도 십 몇 억은 되는 것 같다. 10억원짜리로 조금은 뻥튀기 되어 알려진 어느 수입 스포츠카가 국내에서 팔렸다고는 하지만 좀 의심스럽고, 자동차 같은 것이야 회사에서 처리할 수 있으므로 개인 돈의 소비라고 보기 어렵다. 
어쨌든 무슨 취미이건 간에 그것도 몇 년 해 보면 시들시들해진다. 미국 로체스터대 심리학과 리처드 얀 교수는  상품을 통해 더 많은 만족을 추구할 수록, 발견하는 것은 더 적어질 뿐 이며  만족감은 반감기(半減期)가 짧고, 빠르게 사라진다 고 하였다. 소유가 주는 만족감은 곧 사라지는 기쁨이라는 말이다. 더 이상 소유하고 싶은 것이 없을 때 부자는 허탈해진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음악 감상을 좋아하기에 처음에는 오디오를 업그레이드 시킬 때 마다 행복해 하였다. 그러다가 억대의 오디오로 바꾸었더니 얼마 안가 기계 자체에 대한 관심은 시들해 졌다. 30대에는 처음으로 벤츠도 샀다. 그 당시에는 수입자동차 세금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었기에 상당한 돈이 소요되었다. 그런데 막상 그 차의 뒷좌석에 처음 앉고 나서부터 몇 개월간 우울증에 시달렸다. 왜 내가 우울증에 걸렸을까  더 이상 갖고 싶은 것이 없어졌던 것이다. 
수 천년 전 모든 것을 다 갖고 있었던 솔로몬 왕이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고 탄식하였던 이유도 소유가 주는 기쁨이 종식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독자의 말:  그렇게 헛되고 헛되다 라고 말하게 되어도 좋으니 돈이 정말 많았으면 좋겠다.  나의 대답:  100% 이해한다. ). 
허탈감과 공허감을 극복하지 못하는 돈은 그 소유자의 삶에서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만다. 괴테의 말대로 "가진 것이 많다는 것은 그 뜻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무거운 짐"일 수도 있다. 소유가 주는 만족감을 채울 만 한 것이 더 이상 없게 되면 권력이나 명예에 집착하기도 하고 더 큰 자극과 쾌락을 찾아 도박이나 마약의 유혹에 빠져드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것은, 갖고 싶은 것이 없는 부자 수준이 되면 소유 자체에 대해 어느 정도는 초월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백화점에서 수천만원씩 주고 밍크코트를 사거나 명품 쇼핑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은 어떻게 된 것이냐고  쇼핑하는데 돈을 펑펑 쓰는 사람들이 진짜 부자일리가 없다. 공허감 때문에 쇼핑중독에 걸리는 부자들도 분명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돈을 피땀 흘려 벌게 되면 짜장면 한 그릇 사먹는 것도 아까운 법이고 부자가 되려면 우선은 구두쇠 같은 소비 자세를 갖추어야 하는데 그런 소비 생활이 부자가 되었다고 하루 아침에 낭비적으로 바뀌지는 않기 때문이다. (돈을 펑펑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2세들과 졸부들이며 그들의 낭비벽을 비난하면 안된다. 그들이 돈을 써야 돈이 돈다는 경제 원칙을 잊지 말아라.) 
미국의 백만장자들을 10여년간 연구한 토마스 스탠리(Thomas J. Stanley) 박사와 윌리엄 댄코(William D. Danco)박사가  이웃집 백만장자 (The Millionaire Next Door; 반드시 읽어라)에서 부자들의 공통적 요소 중 가장 두드러진 것으로 밝힌 것 역시 그들이 수입 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생활을 하여 왔다는 사실이다. 
자동차를 예를 들어 설명하면 백만장자들의 54.3%는 갖가지 정보를 토대로 가장 싼 가격에 차를 구입했고 그 가운데 3분의 1 이상은 중고차를 구입했다. 이런 사람들이 쇼핑을 하는데 돈을 펑펑 쓸 거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몸을 치장하는 명품들을 구입하는데 열중하는 사람들은 졸부이거나 연예인이거나 아니면 검은 돈을 손에 쥐게 된 높은 분들이거나 인생관 정립이 전혀 되지 않아서 소유물을 통해 자기를 나타내려는 사람들(개중에는 전문 직업인도 꽤 많다)일 뿐이다. 
부자들은 자신의 경제적 독립을 꿈꾸며 꼭 필요한 것만 구입해 왔기에 부자가 된 사람들이고 이러한 태도는 부자가 되고 나서도 잘 바뀌지 않는다. 돈을 더 벌어도 특별히 쓸 곳도 없으므로 바둥바둥 대지도 않는다. 부자들은 오직 여유자금을 부동산이나 주식 중에서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투자할 뿐이다. 부자들 중에서 짧은 기간에 고수익을 노리는 단타 매매자는 찾아 보기 힘들다. 분양권 전매로 단기간에 프리미엄을 얻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투자 대상을 고른 뒤 장기적으로 그저 묻어 둔다. 아이러닉 하게도 부자들은 그래서 돈을 더 번다.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소유 자체에 대해 초월적인 투자 태도"를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소유 자체가 주는 만족감을 더 추구하고자 투자하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이미 소유한 사람들이니까 그런 초월적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천만에. 부자들이 부자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사치를 즐기고 소비를 왕성하게 하였다는 말을 나는 듣지 못했다. 모두가 다 자기 수입 수준 보다는 덜 쓰고 살아 온 사람들이 부자들이고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다만 나는 부자가 된 이후부터는 돈을 쓰는 편이다. 죽을 때 공동묘지에서 부자 유령으로 소문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 ( 이웃집 백만장자 에서 연예계나 스포츠 스타들과 인터넷 경제로 부자가 된 경우들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당신이 보통 사람이라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읽어야 할 책이다. 부자들에 대한 책을 읽을 때에는 언제나 백만장자들의 현재 생활 보다는 그들이 과거에 어떻게 살아 왔는지를 배우는 것이 좋다. 토마스 스탠리의 다른 책  백만장자 마인드 <The Millionaire Mind> 는 옆집의 백만장자 를 보완하는 면이 강한데 지나치게 통계적이다. ) 

내 딸들아, 이런 놈은 제발 만나지 말아라.   

나이가 어린 너희도 막연하게나마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한 두 번은 생각하여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너희가 결혼을 반드시 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독신으로 살아도 좋다. 
하지만 결혼을 하게 된다면, 여자에게 있어 사랑은, 특히나 너희 세대에서는,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갖추고 있을 때 보다 더 완전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라. 또한, 너희의 결혼 생활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남편이 될 남자 보다는 시어머니를 비롯한 시댁 식구들이 어떤 사람이냐에 의해 더 많은 영향을 받을 수도 있음을 기억하여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발, 마마 보이, 효도를 지상 의무로 생각하는 남자, 부모 말에 절대 복종하는 착한 남자, 과묵하고 말없는 남자, 부모 인생을 대신 살아주려는 남자, 가족 보다 친구가 먼저라고 떠들고 다니는 남자, 제사 안 지내면 큰일 나는 줄 아는 남자 등은 절대적으로 만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 기회가 생기면 그런 남자들에 대해서 별도로 자세히 말 해 줄 것이나 나는 그런 남자들은 직원으로 채용하기 조차 꺼려 왔다.) 
그런 남자들만 아니라면 모두 좋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딸 가진 부모 마음이야 다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너희가 무엇보다도 이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남자를 만나게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이 글은 그렇게 될 싹수가 전혀 없을 뿐 만 아니라 결혼 후에는 너희에게도 조만간 자상함을 보이지 않을, 아니 오히려 너희에게 고칠 점이 많다고 하면서 하나하나 따지고 투덜대기만 할, 그런 남자를 가장 쉽게 골라내는 방법을 너희에게 가르치고자 쓰는 글이다. 
장사를 하건 사업을 하건 봉급생활을 하건 간에 부자가 되기에는 애초부터 싹이 노랗다고 내가 단언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을 살아 나가면서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다른 사람들에게 전혀 세심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왜 나는 그렇게 생각할까  
부자가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호주머니 속에 있는 돈이 그들의 자발적 의사로 내 호주머니 속으로 건너 와 쌓이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를 모른다면 그들이 지갑을 열 리가 없지 않겠는가. 때문에 나는 타인에게 무심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전혀 부자가 될 수 없다고 단언하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살아오면서 직접 검증하면서 깨닫게 된 사실이다. 
어떤 남자들은 자기가 섬겨야 하는 윗사람들에게만 세심하다. 이런 사람은 아부에 능하여 출세하는 경우도 많지만 가족으로부터는 섬김을 받고자 원하기 때문에 가부장적 권위의식에 물들어 있어서 남편감으로는 정말 별 볼일 없다. 윗사람에게 보이는 세심함의 반의 반도 가족에게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이런 남자들에게 있어 가족은 기본적으로 손 아래 집단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보통 남자들은 자기가 아는 사람들에게는 세심할 수 있으나 자기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세심하지 않다. 자기가 모르는 다른 사람들에게 세심하지 못한 남자들을 가장 손쉽게 판가름하는 기준이 있는데 바로, 운전하는 모습이다. 
우선, 남자 친구가 너를 태우고 가다가 네가 도중에 내려야 할 때 너에게 가장 편한 곳에서 차를 세운다면 싹이 노란 놈이다. 기억해라. 그런 놈은 너에게만 세심하며 타인에게는 절대적으로 무심한 놈이다. 절대 그것을 너에 대한 배려로 생각하며 고마워 하지 말아라. 
기사가 운전하는 경우이건, 내가 직접 운전하는 경우이건, 택시를 타고 가는 경우이건 간에 나는 너희에게  가장 편한 곳에서 내리려는  태도를 꾸짖어 왔고,  가장 편한 곳에서 내리려고 하지 말고 뒤에서 오는 자동차들에 가장 방해가 되지 않는 곳에서 내려 달라고 하여야 한다 고 강조하여 왔다. 차량통행이 많은 곳에서 비상깜박이를 키고 차를 잠시 정차 시키는 행위는 내가 그 어느 경우에서도 전혀 용납하지 않아 왔음을 기억하여라. 만일 남자 친구가 너를 그런 곳에서 기다린다면 이미 싹이 노란 놈이다.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느라고 오히려 너희를 불편하게 하는 녀석이 진짜 물건임을 명심하여라. ( 물론 너희 역시 그 불편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 
택시를 탈 경우에도 아무 곳에서나 차를 잡으려는 놈은 싹이 노란 놈이다. 그 택시 뒤에 따라오는 다른 차들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와 택시를 탈 때 길거리 아무 곳에서나 택시를 잡으려고 한 적이 있더냐). 그런 놈들일수록 도로가 혼잡한 이유는 택시와 버스 운전사들이 운전을 험악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진실은 택시를 아무 곳에서나 타는 닭대가리들과 자가용을 아무 곳에서나 세우고 타는 새대가리들 때문에 차선이 엉망이 되는 것이며 그 결과, 운행 시간에 쫓기는 버스가 제대로 다니지 못하다 보니 도로는 개판이 되는 것일 뿐이다. 즉 택시나 버스가 운전을 엿같이 하도록 만드는 원인 제공자들이 바로 그런 닭대가리들과 새대가리들이라는 말이다. 
남자 친구가 너와 함께 어딘가를 운전하며 갈 때 길을 많이 헤맨다면 싹이 노란 놈이다. 길을 떠나기 전에는 미리 지도를 찾아 보고 사전에 준비했어야 한다. 회사에서 거래처를 다녀와야 할 때, 아무 생각 없이 나가는 직원도 있지만 , 이미 그곳을 방문한 적이 있는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거나, 지도를 보면서 거래처에 전화를 하여 길을 상세히 물어본 뒤 출발하는 직원도 있다. 운전하고 가다 보면 알게 되겠지 하는 놈들은 인생도 그 모양으로 지레짐작으로 살고 있음을 나는 보아왔다. 
심지어 길을 헤매는 중에도 절대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으려고 하는 이상한 남자들도 꽤 있음을 알아 두어라. 이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자기 똥고집대로만 하려고 한다. 도심지에서 길이 꽉 막혀 있는데 교통방송 조차 듣지 않는다면 더 이상 그런 남자는 만날 필요 조차 없다. 
깜박이를 언제 켜는지도 눈 여겨 보아라. 자고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계층일수록 깜박이를 켜는데 인색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 는지를 타인에게 사전에 알려줌으로써 혹시나 있을 피해를 줄여주고자 하는 세심함이 타인에게 없는 놈들 치고 잘사는 놈들이 없음을 알아라. (고급차가 그렇게 무심하게 운전한다면 십중팔구 재산이라고는 기껏해야 수 십억원 수준에 불과하거나, 물려받은 부동산의 가격이 폭등하여 졸지에 부자가 된 졸부이거나, 그런 집 주부 혹은 그 자식들이거나, 낙하산 인사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된 놈들이거나, 학연이나 혈연,인맥 같은 것에 의지하여 사업을 하는 사장 새끼들이거나, 그런 놈들 밑에서 제대로 훈련 받지 못한 운전기사이거나, 권력을 좀 갖고 있거나, 그런 권력자나 정치인들에게 빈대 붙어 먹고 사는 놈들이거나 아니면 수입에 걸맞지 않게 차는 좋은 것을 타고 다니려는 놈들이라고 보면 된다. 참, 자동차가 좋다고 해서 무조건 부자라고 생각하지는 말아라. 나는 국산 고급대형차에 엘피지 개스통을 단 놈도 보았다. ) 어떤 놈들은 좌회전을 하는 순간부터 깜박이를 키는데 이런 놈들 역시 정말 싹이 샛노란 놈들이다. 자기가 해야 할 행동을 1초 전에야 깨닫는 놈들은 살아가면서 실수를 엄청 저지를 놈들이기 때문이다. 직진을 하여야 하는데 좌회전 차선에 들어갔거나 혹은 그 반대의 경우가 발생하였을 때 뻔히 옆 차선에 차들이 밀려 있음에도 기를 쓰고 차선을 제대로 회복하려는 녀석 역시 싹이 노랗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수많은 다른 차량들에게 피해가 간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는 자신이 당연히 멀리 돌아가야 한다. 자신의 잘못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 보다는 자신이 입게 될 손해에 대해서만 계산기를 두드리는 놈들은 자기 입장에서만 상황을 보기 때문에 타인의 신뢰를 받기 어려우며 평생 돈 걱정하며 살게 될 놈들임을 기억하여라. 
주차하는 모습도 정확히 관찰하여라.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를 하는 놈이라면 욕이나 바가지 하고 헤어져라. 길거리에서 무단 주차하기를 즐겨 하는 놈이라면 지금은 주차장에 갈 돈 을 아끼려는 놈일 수도 있겠지만 미래에는 주차장에 갈 돈이 없게 될 놈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주차장에서 주차를 할 때는 지나칠 정도로 정확히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텅 빈 주차장일지라도 자기 차의 오른쪽과 왼쪽에 차량이 주차될 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는 말이다. 차를 어느 한 쪽에 삐딱하게 세우거나 대각선으로 비스듬하게 세워놓고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그냥 내버려두는 놈, 혹은 잠시 주차할 텐데 별 일 없겠지 생각하는 놈은 일을 할 때도 자신의 입장만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아내에게도 그렇게 대하는 놈들이다. 
특히, 잠시 몇 분 동안인데 뭐 괞찮겠지 하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놈은, 남들이 그의 행동을 몇분 동안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거의 순간적으로 지나갈 뿐이며 그 짧은 시간에 자신의 행동 전체가 평가된다는 것을 까맣게 모른다. 이런 현상은 여자들에게 더 자주 나타나는데 여자들은 자기 입장에서 세상사를 바라보는 경향이 남자들 보다 더 강하고 자기가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만 세심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자가 되기 어려운 것 같다. 여자들에게는 주차가 어렵다고  장롱 면허를 10년 이상 갖고 있던 네 엄마도 주차 만큼은 칼이다. 내가 몇 차례 잔소리하긴 하였지만.    
담배를 필 때 창 밖으로 재를 터는 놈들 역시 싹이 노란 놈들이다. 그 재가 뒤 차에 날라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것에 무심하기 때문이다. 담배는 피고 싶지만 재떨이는 청소하기 싫고 자기 차는 깨끗이 하고 싶어 하는 놈들은 매사가 그런 식이다. 무슨 일을 하건 자기 편한 쪽으로만 생각한다는 말이다. 이런 놈들이 이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너희에게 잘 대해 줄 것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뒤에 차들이 다닥다닥 붙어 쫓아오고 있음에도 앞 유리창에 워셔액을 뿌려대며 브러쉬로 닦아대는 놈들도 싹이 노란 놈이다. 그 워셔액이 뒤차, 옆차에까지 튕긴다는 것에 무심하기 때문이다. 
속도를 낼 것도 아니면서 1차선을 계속 달리거나 너희가 탄 차를 뒤에서 추월하는 차들이 많다면 네 남자 친구는 전체 차선의 흐름에 무심한 놈이다. 싹이 노라니까 절대 만나지 말아라. 
비보호 좌회전에서 반대편 차량 보다 먼저 좌회전하려고 기를 쓰는 녀석도 싹수가 노란 놈이고 몇 백 미터 더 가서 정식으로 유턴을 하면 될 것을 귀찮다고 불법으로 좌회전하려고 하거나 혹은 뒤에서 차들이 밀려와도 노란 중앙선이 없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차선을 막고 좌회전 깜빡이를 키며 기회를 노리는 녀석들도 평생 돈 때문에 허덕대며 살 놈들이다. 
또한 우회전 차선에 진입하여 직진을 기다리는 녀석은 닭대가리 수준도 못되는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는 대갈통들이므로 절대 가까이 하지 말아라. 두 개의 차선이 하나로 줄어드는 진입 차선에서 순서를 차례대로 지키지 않는 꼴통들은 제발 그 친구들 까지 멀리하기 바란다. 그런 놈들은 평생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뿐 아니라 결혼 후 모든 면에서 너희에게 실망 만을 가득 안겨 줄 놈들이다. ( 못사는 나라 일수록 운전을 엉망으로 하는 대갈통들이 득실대지만 남아프리카 공화국 만큼은 예외였다. 백인통치를 오래 받았기 때문인지 길거리 질서는 한국 보다 훨씬 선진국이다. 신호등이 없는 4거리 혹은 3거리 교차로에는 4 STOP 혹은 3 STOP이라는 표지가 있는데 반드시 정차하여야 하며 순서대로 왼쪽 차 한대가 지나가야 그 다음 도로의 차가 나간다. 우회전 차량을 가로 막고 직진을 기다리는 차  그런 거 없었다. 왜냐하면 욕을 바가지로 얻어 먹게 되기 때문인데 한국에서는 그런 놈들에게 너무나 관대하다. 자기도 그렇게 하기 때문일까  ) 
운전을 거칠게 하는 놈과 과속을 일삼는 놈들은 당연히 피하여라. 그들은 시간을 절약하고자 속도를 냈다고 말하겠지만 그런 놈이 시간을 아끼고자 지랄 떨며 운전하여 집에 돌아와 하는 일이라고는 기껏해야 TV나 켜는 행위라는 것을 명심하여라. 
운전 중 양보를 받았을 때 감사의 표시를 하는가도 살펴 보아라. 보행자 우선 원칙을 지키는지도 눈 여겨 보아라. 무슨 일이건 간에 다른 사람들과의 협력이 필요한 법인데 그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세심하게 고려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실패만 한다. 
비단 운전 습관에서만 세심함의 정도를 간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광고에서 나오기도 하였지만 공공 장소에서 문을 열고 들어갈 때 반드시 뒤를 살펴보고 따라 오는 사람이 있으면 문을 계속 붙잡고 있는가를 살펴라. 또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을 때 멀리 다가오는 사람이 있으면 열림 단추를 누른 채 기다려주는가도 관찰하여라. 
네 애인에게 그런 섬세함이 없다면 그 애인은 부자가 될 가능성이 아주 적다는 것을 알아 라. 왜냐하면 부자가 되는 길은 재테크를 잘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선은 타인이 갖고 있는 문제들에 대하여 섬세하게 대처할 줄 아는 능력에 있기 때문이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바쁜 사람이 지나 갈 공간을 터 주는가도 살펴라. 너와 나란히 같이 손잡고 있고 싶어서 네 옆에 서 있는 바람에 공간을 막고 있다면 그 놈은 너에게  잠시  세심한 것이지 절대 그 세심함이 오래 갈 놈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여라. ( 일행이 몇 명이건 간에 국제공항에서 조차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은 후진국인, 한국인, 중국인이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올 때 나는 공항 에스컬레이터나 무빙 웨이에 서 있는 사람의 뒷 모습만 보아도 그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를 알아 맞출 수 있다. 혼자서 중앙에 서있거나 자기 옆에 가방을 놓음으로써 통로를 막았거나 두 사람 이상이 길을 막고 있거나 하면 틀림없이 한국인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 다닐 때도 반드시 일렬로 서게 하여 왔음을 기억하여라. ) 식당이나 기타 공공 시설에서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 하지 못하는 남자 역시 싹이 노란 놈이다. 한국의 중년층이 많이 이용하는 신라 호텔 레스토랑들을 내가 가기 싫어 하는 이유는 그곳에 오는 손님들이 너도나도 크게 떠들기 때문이다. ( 내 경험으로 볼 때 공공장소에서 제일 시끄럽게 떠드는 민족은 틀림없이 중국인들과 한국인들이다. 나는 외국 호텔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시끄럽게 떠드는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을 한 두 번 본 것이 아니다. 이런 놈들은 기껏해야 1년에 한번 외국에 나올까 말까 하는 수준 정도 밖에 될 수 없음을 알아라. ) 
심지어 사무실에서조차 큰 소리로 전화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목소리가 원래 크다는 것은 결코 자랑이 아니다. 나는 목소리 큰 부자를 국내에서건 해외에서건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목소리가 큰  씩씩한  남자는 절대 사귀지 말아라. 
공공장소에서 휴대폰 벨소리를 반드시 진동으로 바꾸지 않는 놈들 역시 싹이 노란 놈이다. 이것은 기본적인 상식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깜박 잊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음악회에서조차 공연 중에 벨이 울린다. 휴대폰을 끄라는 안내가 사전에 있었어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사람이 무슨 일을 할 때는 언제나 실수 투성이이다. 깜박 하기 때문이다. 빌딩 화장실에 붙어 있는 청소 점검표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화장실 청소가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확인해야 할 사항들을 조목조목 나열해 놓고 일일이 확인까지 해야 하는지 아는가. 그 간단한 일들 중 하나 두개를 청소 담당자가 깜박하기 때문이다. 휴대폰 소리 조차 깜빡하는 놈들은 화장실 청소도 제대로 하지 못하여 점검표가 필요한 놈들임을 알아라. 작은 것 하나 세심하게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일을 어떻게 제대로 할 수 있다는 말인가. ( 너희도 알다시피 나는 내 휴대폰을 언제나 진동으로 하고 다니기에 내 전화기의 벨소리 조차 모른다. 너희들 역시 언제나 진동으로 해놓고 다니는 것을 아빠는 흐뭇하게 생각한다. ). 
지하철과 엘리베이터 같은 공공시설에서 사람이 완전히 내린 후 타는지도 눈여겨 보아라. 운전을 할 때 끼어들기가 금지된 곳에서는 절대 끼어들기를 하지 않으며 아무리 차량이 길게 늘어서 있어도 순서를 기다리는가도 보아라. 줄이 있는 곳에서는 순서를 철저히 기다리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약삭빨라야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이 근저에 깔려 있음을 알아라. 그들은 절약과 노력, 자기개발을 통한 부자 되기 같은 것은 믿지 않으며 일확천금을 기다린다. 부자들을 모두 도둑이라고 몰아 부치는 사람도 그들이며 세상이 썩었다고 가장 열변을 토하는 것도 그들이다. 미국 디즈니랜드에서도 줄을 서서 기다릴 때 새치기하는 사람들은 미국 사회의 중류층이나 하류층이라는 것을 너희도 보지 않았느냐. 
내가 지금까지 말한 싹이 노란 남자가 너희에게만은 세심할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말아라. 그런 남자들은 너희에게 세심할 리가 없다. 모든 일에서 자기 자신의 입장만 생각할 뿐 이 사회가 남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곳임을 모르는 놈이 무슨 성공을 꿈꾼다는 말이냐. 그런 놈은 식당에서 네 물잔에 물이 비어 있어도 절대 너 대신 물을 주문하지 않을 것이며, 네가 무슨 커피를 어떤 농도로 좋아하는지, 설탕이나 프림을 타는지도 모를 것이며, 결혼 후에는 네가 뭘 좋아하는지를 깡그리 무시하고 오히려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만 내세우며 너희에게는 이것 저것 잔소리하면서 너희를 변화시키고자 기를 쓸 놈들이다. 
만일 네 남자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심하지만 너희에게만은 세심하여 잘 챙겨주어 별 불만이 없다면 그 세심함은, 종족 보존의 유전자들에 의해 분비된 특별한 화학물질이 만들어내는 일시적인 세심함이라고 보면 된다.(  운명적 사랑을 믿지 말아라  는 글을 읽어라). 제 아무리 그가 귀엽고 재미있고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할지라도 그런 놈은 그 친구들 조차 멀리하는 것이 네 인생에 유익함을 잊지 말아라. 아, 참, 내가 말한 세심함은 학벌이나 학력과 전혀 상관 없으며, 직업의 종류나 사회적 지위하고도 전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도 잊지 말거라. 좋은 학교 나와 좋은 직업을 가진 이른 바 인텔리로 간주되는 남자라고 해서 세심할 것 이라는 환상은 절대 갖지 말라는 말이다. 
부자가 되지 못하게 만드는 심리   
1990년부터 1999년까지 10년 동안 영국 워릭대 연구팀은 돈이 얼마나 있어야 사람이 행복감을 느끼는가를 연구하고자 매년 영국인 1만명을 무작위로 추출해 생활수준과 만족도를 분석하였다. 행복의 정도를 금액으로 측정하는 최초의 분석적 시도였는데 연구팀은 "가장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돈의 액수는 1백만파운드(약 18억원)" 라고 하였다. 국민 소득을 감안하면 우리 실정으로는 약 9억원 수준이다. 연구팀은 "1백만파운드의 돈이 있다고 해서 다 행복한 것은 아니고 일에서의 성취감, 만족스런 결혼생활, 건강 등이 행복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인들" 이라고 결론지었다(이런 뻔한 사실을 알아내는데 10년씩이나 소비하다니! 하긴 우리나라 교수들의 정부지원 연구결과들도 자세히 살펴보면 골 때릴 정도로 가관인 것이 많기야 하지만.) 
그렇다면 돈 문제 이외에는 건강이나 가정이나 직장에 아무런 문제도 없는 사람들에게 돈이 생기면 행복을 느끼게 된다는 말인가  잠시 동안만 그렇다. 왜 돈 문제 이외에는 걱정근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조차 돈이 영원한 행복을 안겨다 주지는 못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인간은 환경이 바뀌어 지면 재빨리 그 새로운 환경을 아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는 그 이상을 바라기 때문이다. 이른 바 "당연심리"이다. 전세를 살던 사람에게 자기 집을 마련하였을 때의 기쁨이 몇 년 못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된다. 
게다가 행복은 상대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우리는 독립적인 행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다른 사람들보다 더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비교심리"이다. 언제나 우리 눈에는 남들이 더 행복해 보이고 남들이 더 행복할 것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상대적으로 불행하게 여기게 된다. 특히 주변에 세속적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있게 되면 "주변 사람들이 나를 불행하게 생각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우울해 한다. 나는 이것을 "주변인식"이라고 부른다. 
"당연심리"는 개개인에게 상황을 진보시킬 수 있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 내가 나쁘게 보는 것은 "비교심리"이다. 부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이 "비교심리"가 가져온 소비 때문에 돈을 모으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당신이 1년에 11만달러를 벌고 다른 사람들은 20만달러를 버는 세계와 당신이 10만달러를 벌고 다른 사람들은 8만달러를 버는 세계, 이 두 세계 중 어떤 것을 선택하겠느냐고 물으면 대다수의 미국인은 두 번째 세계를 택한다. 왜 그럴까  바로 "비교심리"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웃집에서 차를 갖고 있으면 나도 차가 있어야 비슷한 행복을 누린다고 믿는다. 그래서 좀 무리를 하더라도 기어이 차를 사고야 만다. 추석이나 여름 휴가 때 중고차 값이 오르는 이유도 사람들에게 "비교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남들 다 자가용 타고 가는데 우리도 그래야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나에게 차가 없으면 남들이 나를 불행하다고 볼까 봐 두려워 한다. "주변인식"이다. 마치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사는 사람들 같다. 물론 이러한 심리들은 자기가 현재 이 사회에서 잘 해 나가고 있는지를 평가할 수 있는 방안으로써 스스로를 주변 사람들과 상대적으로 비교하는 심리적 방안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내면 깊은 곳에는 인간이 주변 사람들에 느끼는 시기심이 생각보다 크게 자리잡고 있다. 
결혼을 코 앞에 둔 남녀가 종종 갈라서는 이유 역시 부모들과 당사자들의 "비교심리"와 "주변인식"에 있다. 누구네 집 며느리는 이러이러한 혼수를 해왔는데, 누구누구는 예물로 다이아 1캐럿을 받았는데, 누구누구는 시댁에서 아파트를 사주었다는데 왜 나는 전세냐, 요즘세상에 누가 20인치 TV를 보냐 30인치는 되야 한다….등등의 모든 갈등이 다 남들에게 지고 싶어하지 않는 시기심이 빚어낸 것들이다. 그러다 보니 돈이 모일 겨를이 없다. 수입이 조금만 늘어도 쓰고 싶어 안달이 나며 빚까지 진다. 남들이 가진 것들을 자기도 갖고자 하기 때문이다.(혹시라도 그런 상대방을 만났다면, 또는 상대방의 집안이 그렇다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빨리 헤어져라. 이미 결혼을 했다면 아이가 생기기전에 이혼하는 것이 현명하다.) 
진정한 부자들은 이 세 가지 심리들을 극복한 사람들이다. 서울 강남에 있는 금융기관들에 가서 물어보아라. 진짜 알부자들은 전혀 부자같이 보이지 않는다. 사는 곳도 강남에서는 평범한 곳에서 살고 잠바 하나 걸친 사람들이 수십 억원의 현금을 움직인다. 고 정주영 같은 재벌 1세들의 모습이 TV에 비쳤을 때 도대체 부자같이 보이던 사람들이 한 명이라도 있었는가. 
부자들은 남들이 어떻게 살건 간에 관심이 없다. 흉내내려고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들은 현재의 상황이 아무리 좋아도 다시 나빠 질 수 있음을 알고 대비하려고 한다. 남들과 비교하며 살지 않는다. 남들이 무엇을 갖고 있건 간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우선 돈을 모은다. 돈이 쌓이면 그 돈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나중에" 무엇이든 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원금을 건드리지 않고서 말이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았던 사람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 세가지 심리 때문에 그 원금이 될 작은 돈들을 "먼저" 야금 야금 갉아 먹는다.  
실패하면 제로 점으로 내려가라   

왜 큰 부자들은 대부분 하나같이 가난하였던 과거를 갖고 있을까  어째서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태어나 부자가 된 사람들 보다는 하류층에서 태어나 큰부자가 된 사람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더 많은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중요한 사실은 가난을 일찍 경험한 사람들은 가난하였던 생활 수준이 출발점이었기에 그곳으로 언제라도 "되돌아 가는 것"을 부끄럽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이 잘못 되어 갖고 있던 것을 모두 다 날리는 실패를 당하게 되어도 제로 점으로 "되돌아가" 재출발을 할 줄 안다. 수없이 많은 부자들이 사업이나 투자에서 실패하거나 홍수나 화재 등으로 전재산을 날렸다가도 재기에 성공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러나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어려움이 닥칠 때 제로 점으로 가려고 하지 않는다. 제로 점에서 출발하였던 경험이 없는 그들에게 있어서 제로 점으로 가는 것은 "되돌아" 가는 것이 아니라 개척하여야 하는 미지의 불안한 공포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들은 실패에서 헤어나지 못하며 실패 자체를 너무 두려워 하다 보니 되는 일도 별로 없게 된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말 이전 까지는 넉넉한 환경에서 살았으나 그 이후에는 허름한 적산가옥(일제 시대에 일본인들이 살았던 집)의 2층 단칸방에서 가족7명이 살았다. 고교시절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가마니가 문가리개 역할을 하는 재래식 변소를 주인집 식구들과 같이 사용하는 그런 곳에서 월세로 전 가족이 살았다. 그 변소는 여름에는 파리 구데기들이 득실대는 모습이 적나라하였고 노크라는 것 대신에 인기척을 내야 하였던 그런 곳이었다. 집주인은 시장에서 순대를 파는 부부였는데 가게를 갖고 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순대를 작은 손수레에 끌고 다니며 파는 그런 수준이었다. 그 주인이 사는 집이라는 것도 높이 1미터 수준의 낮은 판자집이었으며 매일 순대 삶는 냄새가 진동하였다. 높이가 그렇게 낮은 이유는 높이 1미터 미만은 건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철거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곳에서 벌레처럼 살았다. 
그 다음에 서울역앞 양동의 쪽방 등 몇몇 곳을 더 거치게 되지만 가정집 차고에서도 살았었다. 나는 몇 년을 그런 곳들에서 혼자 살았고 주거 환경을 좀더 나은 곳으로 바꾸려는 시도는 한번도 하지 않았다. 차고 한칸에 불과한 좁은 공간이었지만 예전 보다는 훨씬 더 나아진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보유 자금을 불리는 데만 관심을 두었다. 
그러다가 28세에 집을 샀지만 1년후 다시 빈털터리가 되었고 빚은 약 3천만원(당시 서울 아파트 한 채 값이었다) 가까이 있었다. 나는 제로 점으로 되돌아 갔다. 당시 나는 주로 번역일에서 수입을 얻었는데 번역 사무실 한 귀퉁이에서 먹고 잤던 것이다. 
부자로 살고 있는 지금도 내가 만의 하나 무슨 잘못 때문에 재산을 다 날리게 되어 빈털터리가 된다면(솔직히 그럴 리는 없다. 나는 비올 때를 대비하여 우산을 서너 개는 반드시 준비하기 때문이다) 즉시 나는 가족을 이끌고 제로 점으로 내려갈 것이다. 그곳은 판자집일 수도 있고 남의 집 차고 일수도 있으며 쓰러져 가는 무허가 비닐 하우스 일 수도 있다. 나의 아내는 내가 빈털터리가 되어 망해버렸는데도 넥타이를 계속 걸치고 양복을 입고 다니면서 다단계 판매나 보험영업 같은 것을 하며 품위를 유지하려고 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아내는 내가 즉시 작업복을 입고 시장에서 노점이라도 할 사람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믿는다. 실제로도 그렇다. 나는 언제라도 제로 점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 
결혼 하기 전 아내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나는 틀림없이 부자로 산다. 돈의 생리와 부자가 되는 비결을 알기 때문이다." 아내는 그 당시 나에게 빚이 아파트 한채 값인 3천만원 정도 있었기에 그 말을 믿지 않았다고 했다. 아내는 순전히 내가 음악을 좋아하는 시티 보이라는 이유 때문에 나와 결혼하였다. 둘째 딸이 태어났을 때 이미 나는 자가용 기사를 거느리고 있었고 아내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틀림없이 앞으로 더더욱 부자로 산다. 나는 딸들에게도 그 비결을 알려주고 싶다. 그 비결 중 하나는 낮은 곳에서 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애들이 중학교 수준이 되면 아빠가 갑자기 망했다고 말하고 거짓으로 재산을 몽땅 차압 당하는 것으로 연극을 꾸미자. 그리고는 판자집으로 이사 가서 단칸방 생활을 하자. 너는 파출부를 하는 것으로 하고 나는 뭐 길거리에서 노점을 하는 것으로 하면 어떨까 모르겠다. 우리 둘은 허름한 옷을 입고 매일 아침 판자집에서 나와 숨겨놓은 진짜 집에 가서 낮에 있다가 저녁에는 다시 애들이 있는 판자집으로 돌아가자. 물론 애들에게는 돈이 전혀 없는 듯 처신하고 등록금은 일부러 늦게 주자. 맛있는 것이 먹고 싶으면 우리끼리 몰래 밖에서 외식하고 들어가고 딸들에게는 수제비나 먹이자. 봉투 붙이는 일 같은 것도 가져와 딸들에게 시키자. " 
이러한 계획은 아내의 반대로 인하여 실제로 실현되지는 못하였고(아내는 내가 농담하는 줄로 알았다고 한다) 그 대신 딸들에게 이 세상에서 대가를 얻는 방법에 대하여 가르쳐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은 곳에서의 삶을 체험하여야 나중에 경제적 문제에 부딪혔을 때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음을 나는 지금도 믿는다. 
중산층이나 상류층에서 태어나 비교적 안정된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실직이나 투자 실패 등으로 인한 경제적 곤란을 겪게 되면 대부분 빚을 내려고 한다. 그러면서 그들이 살았던 생활 수준 보다 현저하게 낮은 곳으로는 내려가려고 하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문제다. 
예를 들어 2 억원 대의 30평형 자기 아파트에서 살던 사람이 주식투자나 사업에 실패하여 빚이 1억 생기게 되면 그 집을 팔아 빚을 갚고 난 1억원을 갖고 전세를 구하되 가능하면 비슷한 규모의 집을 구하려고 하며 이때 전세금이 모자라면 또다시 빚을 얻는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집은 그대로 놔두고 빚을 안고 살아 간다. 그러니 빚에서 헤어나지 못하며 버는 족족 이자에 원금을 갚아나가니 사는 재미도 느끼지 못한다. 왜 그들은 생활 수준을 저 낮은 곳으로 던져 버리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일까  
내 주변에 9천만원의 전세를 살면서 빚은 1억원을 지고 있는 30대 중반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연봉 2천만원대의 봉급생활자였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진퇴양난으로 생각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권유한 방법은 있는 것을 다 처분하여 빚부터 갚고 달동네 월셋방 하나로 옮기라는 것이었다. 그는 "그런 판자집에서 어떻게 애들하고 산단 말입니까 "라고 항변하였다. 나의 대답은 이랬다. "웃기는 소리하지 말아라. 너는 지금 연봉의 절반 이상을 이자를 지불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평생 빚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자기 자신도 알 것이다. 너에게 보이는 해결책은 일확천금이기에 복권이나 주식 같은 것에 눈이 시뻘개지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요행수를 바라거나 무엇인가에 쫓기며 하는 투자는 언제나 허무하게 끝나기 마련이다. 생활비를 극도로 줄이고 자신의 몸값을 비싸게 만드는 방법을 모색하면서 아내의 도움을 받아 밤에 포장마차라도 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어쩔 수 없다. 어릴 때 가난을 맛보는 것도 행운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렇게 하기 싫다면 개인파산을 신청하던지 불법적으로 콩팥 같은 신체의 일부라도 팔아 빚을 갚던지 해라."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 " 너에게 돈을 빌려 준 사람들이야 망하건 말건 개의치 않는다면 외국으로 온 가족이 다 야간 도주하는 방법도 있다. 아내와 법적으로 이혼하면서 전세집은 넘겨주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 경우에는 월급 차압이 들어올 것이므로 직장은 그만두고 세금 안내는 다른 일을 해서 생활비를 벌어 몰래 가족에게 전달해라." "외국에서 살 자신은 없고 이혼은 아내가 반대할 것입니다. 또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 "글쎄다. 술 한 방울 먹지말고 아주 예리한 면도칼 하나를 사고 가족 사진을 앞에 놓아라. 그리고 그 사진을 바라보면서 거울 앞에 서서 네 목에 흐르는 핏줄 바로 위에 칼을 갖다 대라. 너야 죽으면 그만이지만 네 가족은 너를 평생 패배자로, 도망자로 기억할 것이다. 그 점을 명심해라. 그래도 죽고 싶다면 돼져 버려라. 그러나 죽은 뒤 그런 식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면 죽을 각오로 처음부터 빈 손으로 다시 시작해라. 판잣집으로 가서 월세살이를 하란 말이다. 5년만 지나면 모두가 너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 
왜 재산을 갖고 이민을 간 사람들 보다는 빈털터리로 이민을 간 사람들이 그 낯선 땅에서 성공하는 경우가 더 많은가. 밑바탕에서 아무 것도 없이 닥치는 대로 아무 일이나 하면서 그곳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아주 낮은 생활 수준으로 살아가며 돈을 모았기 때문이다. 제로 점에서 살게 되면 모든 것이 플러스 희망으로 쌓여 만 간다. 돈이 쌓이고 희망이 쌓여 간다. 빚이 있는데도 삶의 질과 품위를 유지하려고 들면 그 빚을 갚아야 하기 때문에 돈은 쌓이지 않고 희망은 갉아 먹힌다. 마이너스의 희망 뿐이다. 그것이 절망이다. 
나는 외국인 직원들을 상대로 강의할 기회가 과거에 종종 있었는데 강의 중에 스크래치 scratch 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하였다. "긁어서 내는 흠집, 긁다, 흠집을 내다" 라는 뜻인데 "지운다"는 뜻도 있다. 운동경기에서 땅에다 선을 그으면 출발선이 되기 때문에 "출발선,출발점"이라는 뜻도 있으며 scratch along 은 "근근이 살아가다", from scratch 는 "출발점에서, 맨처음부터,무(無)에서"라는 의미이며, scratch up 은 "돈 같은 것을 긁어 모으다, 푼푼이 저축하다"는 뜻이다. 미국속어에서는 "돈"이라는 뜻도 있다. 
내가 말한다. 경제적으로 실패하였다면 저 아래 낮은 곳으로 내려가라. 체면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그 체면에 "흠집을 내라"(scratch). 출발점을 저 낮은 곳에 다시 "그어라"(scratch). 당신이 놓치려고 하지 않는 생활 수준이라는 것을 "지워버리고"(scratch) 새로운 "출발점"(scratch)에서 "무에서"(from scratch) "근근이 살아가면서"(scratch along) "돈을 모아라"(scratch up). 그러면 "돈"(scratch)이 쌓이게 된다. 이것이 실패로부터 탈출하는 비결이다. 스크래치하라! 
접대를 받지 말라  
  
미국투자회사 칼라일 그룹 서울 사무소의 한국계 미국인 직원이 서울에서 "왕처럼 살고 있다"고 떠벌리는 메일을 친구들에게 보낸 사건이 2001년 5월에 있었다. 문제의 직원은 미국 국적의 20대로 1999년 7월부터 2001년 4월 까지 미국의 세계적인 증권사 메릴린치에서 일하다 5월에 칼라일 그룹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서울 근무를 해왔다. 서울에 온 지 불과 10여일 만에 그는 미국 친구들에게 한국의 접대문화를 들춰가며 호화판 생활을 자랑하면서 "여러 은행의 임직원들로부터 거의 매일 골프와 저녁 술대접 등 향응을 받고 있다 고 메일을 보냈는데 , 그 메일은 메릴린치 증권사를 비롯한 뉴욕의 투자회사 직원들로 급속하게 번졌고 결국 칼라일 본사에 까지 알려져 사표를 냈다는 것이다. 
그 기사를 읽었을 때 내게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 "불쌍한 은행 임직원들…." 은행에서 접대를 하여야 하는 위치에 있다면 나이가 적어도 40대는 되었을 텐데 새파랗게 젊은 20대를 접대하느라 속이 뒤틀려도 엄청 뒤틀렸을 것 같아서 였다. 
사업상의 모든 접대는 대화를 통하여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고 나의 의견 및 내가 팔고자 하는 상품이나 용역에 대해 부연 설명하고자 하는 시간을 갖기 위함이다. 업무 중에는 서로 할 일이 있다 보니 일과 후에 만나 식사도 하고 술도 한잔하면서 그런 시간을 마련한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한 많은 아시아 국가들에서 대부분의 접대는 상대방과 이른 바 인간적으로 친하게  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여기서  인간적으로 친하게  된다는 말의 의미는 십중팔구, 상대가 어떤 스타일의 여자를 좋아하는지 무슨 노래를 좋아하는지를 파악하면서 젊은 여자 애들 끼고서 상대방 비위 맞춰가며 술 쳐 먹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접대의 정점은 상대가 여자와 2차를 나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차라리 그냥 창녀촌으로 가라). 
상대방에게 온갖 아부를 다 하면서 포주 노릇을 하는 이런 식의 접대를 관행으로 여기지 않는 집단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종교계 일부를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계는 물론이고 학계(초중고등학교와 대학도 물론 포함된다), 예술계(특히 미술계), 언론계(신문 방송 잡지 모두 포함), 의료계, 법조계, 연예계, 금융계, 군인 집단, 공무원 집단, 공기업(정말 기가 막히는 곳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민간 기업(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마찬가지이다) 등, 사회 전 분야에서 그런 접대를 한편으로는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받는다.( 참고로 대한상공회의소가 181개 기업을 상대로  접대와 매출의 상관관계 를 물었을 때 응답자의 16%는  많은 영향을 미친다 고 했고 68%는  다소 영향을 미친다 고 했다.  영향이 없다 고 답한 응답자는 불과 16%에 불과하였다.) 
내가 장사, 사업을 하면서 부딪힌 갈등 중 대표적인 것이 이 뒤틀린 접대 관행(접대 문화  그게 문화냐  ) 이었다. 내가 파는 물건이나 용역이 가격과 품질에서 남들 것 보다 우수하다면 당연히 상대방이 구입해 줄 것으로 알았는데 세상이 꼭 그렇지 만은 않았다. 가격은 비싸고 품질은 떨어져도 요령만 좋으면 팔아 먹을 수 있는 게 이 세상이었고 그 요령이란 것은 다름 아니라 구매 결정자를 이런 저런 방식으로 구워 삶는 것이었다.( 구매결정 과정을 파악해라  항목을 참조하라.).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상대방이 내 애인이 아닌 이상,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취미가 무엇인지 등을 미리 알아 내서 상대로부터 호감을 받아내는 것을 아더메치한(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유치한) 행위라고 단정짓는  고지식한 ( ) 사람이다. 나는 룸싸롱에서 거래 상대방과 술독에 빠진 뒤 젊은 여자와의 섹스를 주선해주는 것을 개지랄 떤다고 생각하여왔지 인간적으로 친해지는 과정으로 여긴 적이 전혀 없다. 순전히 이해 관계로만 만난 사람들 앞에서 친한 척 하면서 나는 좋아하지도 않는 동백아가씨 노래에 손뼉을 치고, 신날 것도 없는데 춤도 같이 추어야 하는 것이 나는 싫다. 그런 사람들과 술잔을 머리 위에 터는 짓도 싫고 부어라 마셔라 하는 짓도 싫다. 
내가 그런 접대를 한 것은 "술 한잔 사야 되지 않느냐"고 면박을 주는 공직자들 상대였는데 지난 20여년간 예닐곱 번은 된다. 내가 골프를 안 배운 것도 공무원들 눈치를 보느라 일요일 마다 골프장에 끌려 나갈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아서 였다. 하지만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내 생애 단 한번도, 정말 단 한번도, 그런 접대를 한 적이 없다. 
나는 도대체 그런 식의 지랄을 접대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의심스럽다. 자존심도 없고 배알도 없다는 말인가. 당신 자신이 한심한 생각이 들지 않는가  그렇게 지랄 아양 떨면서 돈을 벌어 정승처럼 쓰겠다고  자~알 해 봐라. 상대에게 고마운 마음에 접대 하는 거라고  영업상 필요하다고  꼴갑 떨고 있네. 내가 볼 때 그런 지랄 수준의 접대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핑계 김에 같이 즐기려고 하는 자들일 뿐이다. 이런 부류들은 언제나 접대비 규제에 대하여  현실을 무시한 처사 라고 목청을 높이거나 별의별 핑계를 다 끌어당기며 반대한다. 그들은 회사 돈으로 골프를 치고 룸싸롱에 다니는 것을 폼 난다고 여기며 출세한 징표로 생각하는 것일까  
물건을 파는 입장에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접대비로 사용할 금액만큼을 품질을 개선하고 가격을 낮추고 서비스를 높이는 데 사용하는 것 이다. 내 생각은 이러했다. 내가 파는 물건이 남들에게는 없다면 접대를 할 필요가 없다. 내가 파는 물건이 남들도 파는 물건이라면 품질이 달라야 하며 품질이 다르다면 접대가 필요 없다. 내가 파는 물건과 비슷한 물건을 파는 경쟁자의 수가 한정되어 있다면 접대가 필요 없다. 술 접대를 멀리하는 분위기가 강한 종교집단에 물건을 판다면 접대가 필요 없다. 내가 제공하는 용역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내가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면 접대가 필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접대를 해야만 상대가 구매를 해 준다면 나는  더러워서  그런 장사는 하지 않겠다( 차라리 나는  거래 를 하는 게 더 좋다. 얼마를 리베이트로 주겠다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아양에 아부 떠는 것 보다는 그냥 봉투 하나 건네는 게 시간도 절약하고 내 적성에 더 맞는다. 하지만 사업상 이런 거래를 한 적은 없으며 공무원 상대로는 해 본 적이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별도 항목에서 언급할 것이다). 
수많은 물품들과 서비스를 팔아 보았지만 단 한번도, 정말 단 한번도, 나는 영업사원에게 할당량이라는 것을 정해 준 적이 없으며 영업사원의 봉급을 판매량에 비례시켜 결정한 적도 없다. 물건이 안 팔린다면 경쟁력이 없다는 뜻이고 그것은 곧 경영자의 책임이지 영업사원의 책임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내가 영업사원의 자질을 평가하던 기준은 얼마만큼 팔았는가가 아니라 판매대금을 언제 얼마만큼 회수하였으며 평상시에 채권회수 방법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실천해 왔는가, 제품에 대한 지식과 경쟁자들에 대한 지식은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가 이었다. 영업사원 개인별로 접대비를 할당한 사례는 단 한번도 없으며 오직 영업부 담당 최고 임원에게만 약간의 영업비를 준 적이 있는데 매출 700억~800억원 당시 그 영업비는 고작 월 100만원 정도 였다. 나는 오로지 식사 접대와 반주 정도 혹은 노래방 수준만 허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부장급 직원이 룸싸롱 접대를 하였을 때 나는 그 부장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얼마 후 그는 사표를 냈다. 
누군가가 내게 접대를 하겠다면 딱 잘라 거절하였다. 어느 지점장에게는 나를 위한 접대비만큼 신용장수수료를 깎으라고 했다. 그러나 어떤 부류들은 가격을 100만원 낮춰달라는 나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 보다는 200만원을 룸싸롱에서 나에 대한 접대비로 날려보내는 쪽을 더 좋아하였는데 회사의 규정상 가격인하는 불허하지만 접대비는 별도 책정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한국에는 이런 웃기는 회사들이 하나 둘이 아니며 여기에는 공기업도 포함된다). 
불시에 과다 접대를 받게 되면 반드시 계산해 주었다. 접대를 안받으니 나 자신 혹은 직원들에게 뇌물이 들어오기도 하는데 오래 전 이런 적이 있었다. 어느 보세창고에서 창고사용 요금을 빨리 지불하여 주어서 고맙다고 경리 책임자에게200만원을 보내온 것이었다(평소 나는 임직원들이 거래처에서 받는 모든 선물과 상품권을 보고하도록 했다. 추석이건 설날이건 예외가 없었다. 단순한 고마움의 표시라면 우리도 똑같이 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보고 받자 마자 나는 담당자들 모두에게 알렸다.  이 멍청한 녀석들아. 우리가 지금 확실하게 바가지 쓰고 있다는 증거니까 즉시 조사해 보아라.  사실이었다. 회사는 이미 적정 요금 보다도 1억원이 넘는 돈을 초과하여 지불한 상태였고 그 보세 창고는 전직 고위공무원이  믿을만한 곳 이라고 하여 소개하여 주었던 곳이었다. 즉 그 전직 공무원은 중간에서 적어도 수천만원을 코미션으로 받고 있었던 것이다. 명심해라. 사업상 당신을 접대하고자 애쓰거나 돈 봉투를 건네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판매하는 것의 가격을 더 깎을 수 있거나 품질이 경쟁자들 보다 떨어진다는 뜻이라는 것을. 
나는 접대를 하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이 더 나쁘다고 믿는다. 이 사회에서 접대를 받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꽤나 공부도 많이 한 새끼들이고 이른 바 일류대 다닌 새끼들도 엄청 많은데 도대체 당신이 접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신을 접대하는 사람이 당신에게 술을 사주고 심지어 2차까지 준비해 주는 이유를 당신은 모른다는 말인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은 당신하고의 돈독한 관계가 아니라 이득이다. 이득을 얻기 위한 "얼굴 익히기" 이다. 그것을 "인간관계의 개발"이라고 미화시키지 말라. 목적이 뻔한 향응을 받는 것이 무슨 인간관계이고 "휴먼 네트워크의 개발"이란 말인가. 술을 좋아한다고  당신 돈으로 친구들과 소주나 마셔라. 진심어린 접대는 존경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지 이득을 추구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접대를 받는 당신이 공직에 있다면 이권을 팔아먹는 도둑이 된다. 당신이 의료계에 있다면 환자의 주머니를 후리는 것이며 법조계에 있다면 무전유죄를 조장하는 것이고 회사의 임직원이라면 회사돈을 훔치는 것이며, 언론계에 있다면 스스로 사이비가 되겠다는 뜻이고 교육계에 있다면 위선의 탈을 쓴 것이며 예술계에 있다면 협잡꾼에 지나지 않는다(기업교육전문가 김찬배의  개인과 회사를 살리는 변화와 혁신의 원칙 을 읽어라). 
당신이 죽으면 당신 무덤에  캭  하고 가래침을 뱉을 사람들이 줄지어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이 개새끼들아, 부끄러운 줄 알아라. (당신 아버지가 접대를 받느라 바쁘다면 그가 당신 아버지라도 부끄러워해라.) 젊었을 때 세상을 더럽다고 욕하고 침 뱉던 당신 자신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가. 
Metallica 의 노래 중 The Unforgiven 에서 이런 가사가 나온다. 
….What I"ve felt 내가 느꼈던 모든 것들이 
What I"ve known 내가 알았던 모든 것들이 
never shined through in what I"ve shown나의 행동 속에서는 전혀 나타나질 않았다니. 
never free (나는) 전혀 자유롭지 않다 
never me (나는) 전혀 내가 아니다 
…. 
He"s battled constantly 그는 끊임없이 싸워왔지만 
This fight he cannot win 이길 수 없는 싸움. 
A tired man they see no longer cares 지친 몸으로 이제는 싸움을 포기하고 
The old man then prepares 그렇게 나이든 채 
to die regretfully 후회 속에 죽을 준비만 한다. 
That old man here is me 그 늙은이가 바로 나 …. 
나는 그렇게 살기 싫다. 내가 10대 20대에 제일 싫어한 사람들이 40대 50대의 꼰대(아저씨)들이었다. 내 눈에는 모두 위선자들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내가 그 꼰대 계층에 속한다. 나는 내가 젊었을 때 혐오하였던 능글능글한 꼰대가 되고 싶지 않아 왔다. 내가 싫어했던 꼰대 모습이 싫어서인지 배가 조금만 나와도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나는 내가 20대에 좋아했던 것을 아직도 좋아하고 그 때 싫어한 것들은 여전히 싫어한다. 
이 글을 읽는 젊은이들에게: 지금 네가 침 뱉는 대상이 미래의 너의 모습이 되지 않도록 살아가라. 젊었을 때 최루탄 가스를 맡아가며 기성 세대에 분노하였던 새끼들도, 4.19 세대들이건 6.29 선언 세대들이건 간에, 세월이 지나 40대,50대가 되면 똑같이 똥개가 되어 버리기 일쑤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런 똥개 변신에는 그 어떤 학벌이나 학력도 백신 역할을 하지 않는다. 서울대, 연대, 고대 나왔다고, 고시에 합격하였다고 똥개가 안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왜 그렇게 가증스럽게 변하는 것일까  바로 돈 때문이다. 그러므로 젊었을 때부터 자신의 소비생활을 통제하고 몸값을 높여 나가라. 그 길 만이 네가 지금 혐오하는 대상으로 변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자, 룸싸롱 아가씨들에게 물어보라. 그곳에서 "제일 좃같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누구냐고. 이 사회에서 이른바 존경 받는다는 직업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다 나올 것이다. 하나 더 물어 보아라. 그곳에서 제일 불쌍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누구냐고. 접대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것이다. 
좋은 자리에 있을 때 접대 받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나무는 잘려 넘어져 있을 때가 그 크기를 가장 잘 잴 수 있는 법이다. 당신이 그 자리를 떠나면 개새끼도 당신을 쳐다 보지 않는다. 세상은 요령껏 살아야 한다고  향응을 받고 멀쩡한 사람을 불쌍하게 만드는 것이 당신 요령인가  접대를 하는 입장에서 뒤돌아서면 무엇을 생각하겠는지 한번 생각해 보아라. 상대방이 고마운 마음에 하는 접대라고  밥이나 얻어 먹고 일찍 헤어져라. 상대방이, 아마도 그 아내와 가족까지도, 평생 고마워할 것이다. 
(내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 부자가 된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재벌들이 정치인들에게 굽실거리며 돈 주는 이유가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돈을 더 벌려고  )  
돈에 대한 위선을 버려라   
돈에 대한 한국 사회의 태도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처럼 대단히 이중적이다. 어느 종교에서는 돈이라는 말 대신에 물질이라는 단어를 즐겨 쓴다. 신성한 장소에서 돈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 조차 불경스럽게 여기기 때문 일지도 모른다. 돈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상스럽고 천하게 여기는 태도는 우리 사회 어디서나 나타난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는 최영 장군식의 초월적 가르침도 있고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 베게를 베면 행복한 것 이라는 식의 안빈낙도가 교육의 한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런 점들을 생각하면 이 사회는 그 어느 나라보다도 더 깨끗하고 청렴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살펴보면 작가출신 정치인 김홍신의 말처럼 이 나라는 한 푼이라도 서로 더 빼앗기 위해  서로 뜯어먹고 사는 사람들  이 가득한 곳이고 , 그러한 탐욕으로 인해 한국의 부정부패지수는 에스토니아, 남아프리카 공화국,모로코 등보다도 더 낮은 48위이며(국제투명성기구 2000년도 발표) 전세계 수출주도 국가 19개국 가운데 한국의 뇌물공여지수는 최하위인 18위에 머물고 있고, 떡값과 리베이트가 어느 곳에나 만연하여 있다. 
돈에 대한 태도가 이렇게 겉과 속이 전혀 다른 이상한 모순을 보이는 나라가 또 있을까  
J.크놀린의 소설 '천국의 열쇠'는 두 청년 안셀모 밀리와 프랜치스 치셤의 삶을 비교하여 보여준다. 같은 성직자의 길을 가면서도 늘 가난한자의 편에서 검소하게 사는 프랜치스와 명예와 부를 추구하는 안셀모. 신학생 시절에 안셀모는 학생회 회장과 여러 모임의 회장직을 맡았었고 프랜치스는 조용하면서도 종종 풍파를 일으키는 문제 학생이었다. 출세를 하는 것은 안셀모였다. 
프랜치스는 자신이 선교사로 활동하는 중국의 파아란 지방에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들어서자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기는커녕 사랑을 공유하고자 한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그는 이단시 당함으로써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에는 실패로 연속된 삶을 살게 된다. 반면에 안셀모는 주교가 된다. 주교가 된 안셀모의 방문을 위해 프랜치스는 새로 성전을 준비하느라 정성을 다하지만 홍수로 인해 성전은 모두 무너진다. 그 자리에 거대한 행렬을 이끌고 멋진 말만 하러 온 안셀모. 그리고 보여줄 것이 모두 다 무너져 버린 프랜치스. 안셀모의 마차때문에 프랜치스는 진흙탕 물 까지 뒤집어 쓴다. 여전히 세상의 존경을 받는 쪽은 안셀모이다. 프랜치스는 사회적인 명예나 부는 원하지 않았다. 그가 추구한 것은 오직 사람들간의 화목과 사랑이었다. 
안셀모와 프랜치스는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탐내는 두 가지 욕심을 보여준다. 명예와 부와 편안함이라는 욕심과 자기를 희생하며 실천하는 사랑과 그로 인한 보람내지는 기쁨을 누리려는 욕심. 그 어느 쪽의 길도 사실 쉬운 것은 아니다. 
여기서 내가 독자들이 주목하기를 바라는 인간 유형은 "좋은 말만 늘어놓는" 안셀모이다. 소설에서 안셀모가 대중의 존경을 받았듯이 이 세상은 "좋은 말만 늘어놓는" 사람들이 존경 비슷한 것을 받는(한국은 특히나 더 그렇다) 이상한 곳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변호사;나는 돈 때문에 일하는 것이 아니라 억울한 사람을 위해 변론하는 것이다. 의사;나도 돈 때문에 일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일한다. 정치인;나 역시 돈이나 명예 때문에 일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일한다. 교수; 나는 돈은 없어도 그만이고 미래의 재목들을 키우는 것이 보람이다. 종교인; 나야 물론 돈과는 거리가 멀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봉사하는 사람 아닌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부자로 살고 있다면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엿먹어라! 나는 당신들 모두가 먹고 살 수 있도록 돈을 낸다." 나는 돈에 대한 욕망을 그럴듯한 명분이나 보람으로 위장하여 듣기 "좋은 말"로 포장하는데 능숙한 사람들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저술가 김지룡은  개인독립만세 에서 이렇게 말한다.  명분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은 패거리 문화를 만들어 낸다. 명분의 세계에서는 옳고 그른 것이 없다. 자기에게 얼마나 유리한가가 판단의 근거이다. 명분을 내세우는 사람은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고 사기꾼이기 십상이다. (사족; 나는 김지룡의 책을 매우 좋아한다. 그와 술자리를 같이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내 아내는 그의 여성편력이 잘 나타난 책 '나는 솔직하게 살고싶다'를 먼저 읽었기 때문에 그의 다른 책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 
예컨대 변호사가 매일 라면도 먹기 힘든 보수를 받으면서 힘없고 억울한 사람들을 위한 변론만 하는 직업이라면 당신은 그 직업을 택하겠는가  의사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무료 진료를 하여야 하고 과거 소련에서처럼 낮은 월급을 받을 뿐인 그런 직업이라면 당신은 하겠는가  국회의원이 생기는 것 한푼 없는 직책이고 힘도 없는 그런 직책이라면 그렇게들 하고 싶어 하겠는가  대다수는 그럴 리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사실은 대가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돈 때문에 일하는 것은 아니라고 극구 변명한다. 그들이 빈민촌의 가난하고 헐벗은 자선사업가, 무보수의 자원봉사자라면 나도 그 말을 믿고 존경한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그저 그들을 자기 속내는 숨기고 "듣기 좋은 말"만 하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평가 절하시키고 만다. 특히 툭하면 국민의 이익을 내세우며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실은 자기 실속과 밥그릇을 따지는 집단들은 그 집단이 공기업 노조건 무슨 협회건 간에 나에게 있어 꼴갑 떠는 놈들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가난하였을 때 이 사회에서 이른 바 존경 받는다는 사람들은 내게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직업에는 귀천이 없으며 어느 일을 하던지 간에 보람을 찾아야 한다 고 강조하였다. 그들이 즐겨 들려주던 예화는  두 명의 석공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먹고 살기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였고 다른 사람은 부처님을 위한 석탑을 만든다는 보람을 갖고 일을 하기에 기쁨을 느낀다 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게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은 석공이 아니었다. 폼 나는 직업을 갖고 있었다. 
자기들은 챙길 것 다 챙기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돈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보람을 가지고 일을 해라 고 말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 것일까  나에게 그건 위선이며 자기 기만이다. 보람을 느끼라고  프랜체스처럼 자기를 희생하며 사는 사람이 내게 그렇게 말을 한다면 나도 믿는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일한 대가로 받는 보수가 이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편에 속한다면 그는 대가를 보람으로 위장하고 있는 것이다. 
수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고자 일을 하면서도 그 사실을 말하는 것은 꺼려 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미화시키려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프로는 아름답다. 프로 선수는 돈 때문에 뛴다. 또 돈 때문에 뛰기에 프로가 되게 된다. 더 많은 돈을 받고자 더 많이 노력한다. 프로 선수에게 돈은 그 노력에 대한 대가이며 자기만큼 노력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차별을 원하는 자존심이며 명예이다. 돈을 적게 받으면 당연히 그것은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명예에 금이 간다. 
1970년에 발표되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온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을 읽어 보았는가  조나단이라는 갈매기가 고기잡이 배와 해변 사이를 단조롭게 오고 가며 먹는 것에만 급급한 다른 갈매기들 사이에서 추방당했어도 자신의 꿈인 완전한 비행을 위하여 열심히 노력한다는 내용이다. "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가 가장 멀리 본다." 진정한 삶의 목적을 찾아서 비행하는 조나단은 더 높이 나는 것을 통해서 완전한 자유를 찾아간다. 정말 멋지다. (자고로 책은 이렇게 돈이나 먹을 것을 초월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야 잘 팔리는데 정작 그런 책의 저자들 대부분은 국내의 류 시화 시인 처럼 인세를 많이 받게 되어 돈이나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을 하게 된다. 이게 나로서는 좀 떮떠름하다. ) 
그러나 이 세상에는 벌레를 찾아 낮게 날면서도 자신이 높게 날고 있다고 착각하는 갈매기들이 넘쳐 난다. 그 갈매기들은 그 착각 때문에 위선자들로 전락하고 만다. 나는 그런 위선자들 가운데서 능력있는 프로를 보지 못했다. 나는 남들이 뭐라고 하던지 간에 삶에 대한 자존심 때문에 낮게 날면서 벌레부터 먼저 잡아 먹자고 작심을 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프로다. 월 스트리트 금융 기관들에서 신입사원 면접을 볼 때 지원 사유를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서라고 답하면 모조리 불합격이다. 돈을 벌고 싶어서라고 말하는 사람만 합격된다. 부자가 되려면 돈에 대한 가식을 버리고 프로가 되라. 배고픈 갈매기는 높이 날려고 해도 기운이 없어 그렇게 하지 못한다. 
아내들이여, 남편부터 변화시켜라    

요즘 젊은 세대들이야 맞벌이가 흔하지만 나이 든 세대에서 아내는 집에서 살림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나이와 상관없이 별도의 직업을 갖고 있지 않은 전업 주부들은 어떻게 해야 부자로 살 수 있을까. 투자 공부를 열심히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  
모든 것은 우선 남편에게 달려 있다. 제 아무리 학벌이나 직장이나 직업이 좋아도 남편이 술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며 책을 읽는 것과는 담을 쌓았고 텔레비전 앞에 있기를 즐기며 어쩌다 책을 읽어도 자신의 몸값을 올릴 수 있는 것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고 자기 생활과 시간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며 카드 빚도 발생하는 상황이지만 남편 역시 부자로 살게 되기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단 하나이다. 그 남편의 대갈통 속에 들어 있는 생각과 행동을 바꾸지 못할 것 같다면 가난한 생활과 일찍부터 친해지던지 아니면 일찌감치 헤어져라(내가 대갈통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게 가족을 책임지려는 사내새끼의 머리통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애가 아직 없다면 더더욱 그렇다. 
나는 여자들이 싹이 노란 남자들을 왜들 그렇게 끼고 사는지 모르겠다. 나는 내 딸들이 나중에 그런 남자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른 바  그놈의 정 때문에  헤어지지 못한다면 깍두기들(조폭)을 시켜서라도 그 남자 녀석을 사라지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할 정도이다. 
특히나 내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남편이 대기업에 들어갔다고 해서 혹은 자격증이나 면허증 소지자라고 해서 혹은 전문직업인이나 기술자라고 해서 자기 부부의 삶은 평생 안정될 것이라고 믿는 아내들의 아둔함이다. 이 세상이 경쟁사회라는 것을 뻔히 경험하였을 텐데도 일단 이 사회에 발을 들여 놓고 자리를 잡으면 그 위치가 평생 보장되는 것이므로 알뜰살뜰 절약하는 태도만 가진다면 살아가는데 있어 큰 어려움은 없으려니 생각한다는 말이다. 특히 남편의 학벌이 비교적 괞찮고 직장도 번듯하다면 더더욱 그렇게 믿는 경향이 강하다. 자기계발이라는 것은 학벌이 신통치 않은 남편들이나 하는 것이고 내 남편은 학벌도 나쁘지 않고 직장도 좋으므로 별 걱정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원 세상에나… 자기 남편 주위에 있는 경쟁자들이 모두 비슷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좀 알아라. 
그러다가 이런 저런 이유로 경제적 압박을 받기 시작하거나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거나 아파트 값이라도 크게 오르면 그때서야 정신을 버쩍 차리고는 일단은 돈을 벌어야 겠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부동산이나 주식에 관심을 갖는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나에게 메일을 보내는 30대 후반 이후의 그런 주부들에게는 희망을 갖고 살라는 말도 하지 못한다. 당신 남편이 이 정글 속에서 무능력하게 되어 버린 데에는 그들 책임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젊은 아내들이여. 시댁이나 친정이 부자가 전혀 아니라면 내 말을 믿어라. 부자로 살고 싶다면 남편이 적어도 30대 중반까지는 엄청난 노력을 하면서 능력을 배가 시켜야 한다. 
결혼 전 학벌 따위는 몽땅 무시해라. 대학원이고 나발이고 박사 학위고 나발이고 간에 당신 남편이 일하는 곳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 남편과 오십보백보의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임을 기억해라. 쉽게 말해서 100명 모두 쟁쟁한 학벌 소유자일 때 당신 남편이 그들과 비슷한 학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그 집단 내에서는 정말 개뿔도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라는 말이다. 게임은 학교를 마치고 나서부터 혹은 자격증이나 면허증을 획득하고 나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왜 이 사실을 모른다는 말인가. 
하지만 아내로서 당신이 잘 살고 싶어하면서도, 일에 미치고 자기 계발에 몰두하는 남편에게  그렇게 일이 좋으면 왜 나랑 결혼했어  우리 기쁜 젊은 날이라는 데 이 아까운 시간, 사랑할 시간도 없이 그렇게 노력해서 성공하면 뭐가 기쁘겠어  나한테도 좀 관심을 좀 가져 줘.  라고 계속 툴툴거리는 타입이라면 당신은 남편에게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고 외치는 셈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나는 신혼 부부들에게 이런 충고를 하곤 했다. 

남자는 삼십대 중반까지는 능력을 배가 시켜야 한다. 그때 까지는 아내가 남편을 홀로 내버려 두어야 하는데 대개는 새콤달콤한 결혼 생활을 기대하기에 남편이 혼자 능력계발에만 몰두하게 되면 부부가 같이 있는 시간도 얼마 안되고 대화할 시간도 없으니 이게 사는 거냐고 바가지를 긁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어차피 애를 날 예정이라면 빨리 애를 하나 낳고 3년 정도 터울로 하나 더 낳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5년 동안 아내는 아이 둘을 키우느라고 정신이 없어질 것이다. 물론 그 기간 동안 남편은 아내에게 꽃이나 향수나 손수건이라도 종종 선물하고 생일이나 각종 기념일은 칼 같이 챙기면서 카드도 자주 보내고 틈나는 대로 스킨쉽을 하면서 사랑의 확신을 심어 주어야 할 것이다.  이 방법은 아내가 직업을 갖지 않는 경우 유용한데 내가 사용한 방법도 그와 비슷하다. 젊은 아내들이여. 당신이 부자로 살고 싶다면 , 아니 적어도 경제적으로 돈 걱정 만큼은 안 하면서 살고 싶다면 , 아이들에게 남들 하는 것 만큼은 해주고 싶다면 , 신혼 초부터 바가지를 긁어야 하는 것은 남편의 나태함이고 안이함이며 게으름이다. 당신과 같이 있는 시간과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리라는 요구가 아니라는 말이다. 무조건 공부를 시켜라. 당신 혼자 제 아무리 새벽에 일어나 자기계발과 주식 , 부동산 ,경매 등을 배운다 할지라도 남편이 변화하지 않고 남편의 도움 없이 아내 혼자서 돈을 만들기는 한국적 상황에서 쉬운 것이 아니다. 
메일을 보낸 독자들을 위한 공통 답변 메일   
..  이 글은 독자들이 저에게 보내는 여러 메일들에 대한 답을 하나로 모아 미리 만들어 놓은 답변 메일이며 찾으시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답변을 쪼개서 보내도 되겠지만 일일이 찾는데 시간이 걸려 이렇게 하나로 묶은 것이므로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004년 6월 개정) 
------------------------------------------------------------------------------ 
1. 모든 글은 철저하게 저 혼자서 씁니다. 언론에 실릴 때는, 편집자들에 의해 문구가 점잖게 순화되지만 본래는 쌍욕도 나오고 거친 표현이 많습니다. 
2. 제 직업은 사업가,경영자,투자자입니다. 사업은 45세 때 거의 손을 떼었지만 그 이후에도 규모가 작은 일들을  놀면서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2001년 신동아 1월호에 실린 제 소개를 읽으시면 됩니다. 
55년생으로 지난 5년간 매년 평균 10억원씩을 소득세로 냈다. 일가친척이 전혀 없는 가운데 부모를 일찍 여의고 가난 때문에 고교를 4년만에 졸업했다. 고교 3학년때 친구 아버님들의 돈을 빌려 광고대행업을 하였으나 망하였다. 고교졸업후 공군사병으로 복무하면서 부동산 관리 업무와 도서관 관장을 했다. 제대후 3번의 자살 시도가 있었다. 그 뒤 미8군내 메릴랜드 대학 분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보따리 장사부터 시작하였고 평균 3년마다 주력업종을 바꿔가며 입시영어학원, 번역업, 의류업, 정보처리, 컴퓨터, 음향기기, 유통업,무역업 등에 손대면서 사업,부동산,증권 등으로 수백억대의 재산을 학연,혈연,지연,정치적 배경 없이 홀로 이룩하였다. 세계적 다국적 기업의 아시아 지역 부사장직도 겸임하였다. 사업상 지금까지 70여개국을 여행했다. 국내에서 경영하였던 회사들은 500만불 수출탑과 석탑산업훈장을 받았으며 인재경영대상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39세에 은퇴시도를 했었으나 실패하였고 개인적으로 굴리는 순수 현금투자자금은 100억원대이다. 사업과 투자를 위해 수많은 국내외 서적들을 읽어왔다. 
필명 세이노는 현재까지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해 No 라고 말하라( Say No)는 뜻이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사람을 가르치고 깨우치는 일이며 가장 싫어하는 것은 접대 술자리, 기업정치가들. 끝 
(위의 사실은 2000년11월 현재이며 2001년부터는 소득세를 수억대 수준으로 낮추었음) 
3. 저의 글을 읽으시려면 인터넷에서  세이노 를 검색하시면 됩니다. 어떤  웃기는 독자들 은 자기가 바빠서 ,혹은 찾아 읽는데 시간이 걸리므로, 제 글들을 파일로 보내달라고 하는데 그냥 콱 …. 
4. 동아일보 컬럼 연재는 제 원고가 신문사의 편집 과정에서 짤려 나가거나 빠지는 것이 싫어서 제가 일방적으로 중단하였습니다. 이코노미스트에는 바빠지는 바람에 중지하였습니다. ( 그 어떤 연재이건 간에 저는 제가 쓰고 싶지 않으면 언제라도 일방적으로 그만둡니다. 저는 독자에 대한 어떠한 의무나 약속도 없는 상태로 글을 씁니다.) 
5. 언론에 글을 주었던 이유는 부자들을 모두 도둑으로 여기거나 돈에 환장한 불행한 사람으로 보는 그 어리석은 사람들을 일깨우기 위함이며 그것이 저에게는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모든 독자에게 빠짐없이 친절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마십시오.) 
6. 언론에 실려 공개된 글이라고 할지라도 저작권법에 따라 저작권은 저에게 있습니다.  언론에 실린 글 에 한하여 제 글이 실린 언론 매체와 날짜, 그리고 저의 필명과 sayno@korea.com 이라는 이메일 주소를 수록한다면 누구나 무료로 사용을 허가합니다. 그러나 인터넷에서는 회비를 받건 안받건 간에 회원으로 가입된 사람들만 읽을 수 있는 게시판에 수록하는 경우 모두 불허하며 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경우 법적 책임까지 물을 것입니다. 
7. 개인 홈 페이지가 예전에는 있었는데 언론에 글을 쓰면서부터 없앴습니다. 독자들과 토론을 할 생각도 전혀 없습니다. 앞으로도 만들 것 같지는 않습니다. 

8. 저를 만나고 싶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그럴만한 시간이 없으므로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한편, 저에게 강의를 요청하는 곳들이 있습니다.영광스럽게 생각하지만 저는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가면을 쓴다면 모를까 ) 
9. 신원을 밝히지 않는 이유는 프라이버시 침해가 싫어서 입니다. 명예나 인기라는 것이 부질없고 하찮은 것이라는 것도 잘 압니다. 필명으로 쓰기 때문에 어떤 것도 눈치보지 않고 더 솔직하게 쓸 수 있는 이점도 있습니다. 
10. 출판한 책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독자들의 메일을 볼 때 답답함을 느끼는 경우가 너무 많아 책을 내기는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반드시 책을 내야 한다는 정신이 약하다 보니 원고정리 하는 것 보다는 다른 것들에 더 몰두하게 됩니다. 게다가 언론에 실린 글 만으로는 책을 낼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아마도 2005년 말 정도가 되면 상당히 두꺼운 책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자신은 하지 못하겠습니다. 
11. 독자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저는 인세를 받으려고 책을 낼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인세는 저 개인에게는 한푼도 필요 없으며 몽땅 제가 지정하는 곳에 기증될 것입니다. 
12. 모든 메일은 일단은 제가 직접 먼저 후다닥 봅니다. 답은 비서가 보낼 때도 있습니다.( 이 답변 메일을 받으셨다면 비서가 보냈을 확률이 높습니다.) 인터넷에서 에티켓이 뭔지 모르는(특히 저를  당신 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메일들은 모두 무시합니다. 성의 없는 메일을 보내놓고 마치 저에게 답변 의무라도 있는 양 생각하는 이상한 분들이 간혹 있는데 저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태도입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채팅 하듯이 보내는 메일들을 보면 정말 가관이고 절반 이상이 제 개인적으로 볼 때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그런 메일들입니다. 
게다가 제 글을 모두 다 읽어 보지도 않고, 읽었다 할지라도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읽은 뒤 , 제게 메일을 보내는 사람이 많은 데 정말 답답할 뿐입니다. 
독자의 개인적 상황에서 나오는 질문이 아닌 경우, 예를 들면 경제가 잘 될 것으로 생각하느냐 등등과 같은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을 하지 않습니다. 답변을 하는데 제 시간이 지나치게 많이 사용되어야 하는 경우 역시 답하지 않습니다. 부자가 되고 싶은 데 무엇을 해야 할까요, 5천만원의 여유 자금이 있는데 무슨 장사를 할까요, 지금 집을 살까요 말까요, 이런 질문들 역시 질문자의 개인적 상황을 모르는 한 저는 무시해 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말하지 않고 상담을 요청하는 직장인들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왜 사람들은 개개인의 능력과 상황이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상황은 별로 설명도 하지 않은 채 그런 질문을 하고 그런 질문에 대한 어떤 모범 답안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답답한 것은  제가 나이가 몇 살인데 할 줄 아는 게 없습니다 제가 뭘 하면 좋을까요   라는 식의 메일을 보내는 사람들인데 마치 저를 점쟁이로 착각하는 듯 합니다. 
더더욱 답답한 것은  제가 좀 게으른 편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는 식의 메일들입니다. 아니, 자기 스스로도 고치지 못하는 게으름을 제가 무슨 수로 바꿀 수 있겠습니까   그냥 콱 죽어버려라  라고 할까요  
재테크에 대한 상담 메일을 보내셨다면 일단은 답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우선은 일을 잘하는 법을 배우고 그 다음이 재테크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게다가 독자들이 재테크에 대한 공부를 스스로 할 생각은 하지 않으면서 또는 자기 시간과 노력은 투여하지 않으면서 그저 손쉽게 메일 하나를 보내 답을 얻어낼 수 있는 그런 친절한 공짜 상담자가 저는 결코 아닙니다. 더욱이 저는 독자들 개개인의 수준을 전혀 모릅니다. 제가 재테크 상담을 직업으로 갖고 있는 사람이 결코 아님도 기억하여 주십시오. 주식이나 경매 관련하여서도 거의 답을 드리지 않습니다. 저는 독자들이 공부하기를 바랍니다. 참고로 요새 재테크 상담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인터넷 사이트들이 많이 있으니 개인적 상황에 맞는 재테크 상담을 받으시려면 그곳을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이때 상황을 아주 아주 자세히 설명하여야 함을 잊지 마세요. 예를 들면 가게를 분양 받으려는데 그 동네 뒷길에 이미 가게가 많거든요. 분양을 받아도 좋을까요  …이런 식으로 뜬 구름 잡듯 말씀하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서 법에 대한 이야기를 줄곧 다루었더니 법률적 문제에 대한 질문도 많습니다. 하지만 변호사,법무사,세무사 등과 같은 전문인들에게 돈을 지불하고 상담을 하거나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게 되면 답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 저는 답을 드리지 않습니다. 저는 법률상담 무료 자원봉사자도 아니며 그런 문제들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는 방법 조차 모르는 사람들은 인터넷의 올바른 사용방법부터 배우시기를 권유합니다. 
저는 독자가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며 나가는 중 현실 속에서 문제에 부딪혔을 때 구체적으로 예의를 갖춰 자신의 처지를 대단히 상세하게 설명하고 제 의견을 구할 경우에만 답을 보내드립니다. 제 답변은 독자가 어떤 태도로 글을 보냈는가와 비례합니다만 저도 바쁘기 때문에 대개는 보통 몇 줄 정도에 불과합니다. 절대로 저에게서 친절한 긴 답변은 기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답신을 보냈음에도 독자의 메일 박스가 가득 차 있어서 되돌아 오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이 경우 저는 두 번 보내는 수고를 하지 않습니다. 
13. 독자들이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하여 달라는 경우, 막막해 집니다. 저는 그 독자가 어떤 책들을 몇 년이나 어느 정도나 읽었는지, 나이는 어떻게 되며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모릅니다. 책이라는 것이 각자의 상황에 맞아야 하는데 그런 상황을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나마 한 두 권의 책 이름이나마 알려드릴 수 있는 경우는 그런 개인적 상황을 상세하게 알려주셨을 때 뿐입니다. 
제가 가장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책방에 전혀 가보지도 않고 "제가 이러이러한 것을 하려고 하는데 무슨 책을 읽을까요 " 라고 저에게 먼저 묻는 분들입니다. 먼저 책방을 가 보십시오. 엄청난 책들이 있습니다. 그 책들 속에서 자기가 알고자 하는 분야에 대하여 살펴보고 최소한 한 두 권 정도는 스스로 골라 읽어야 하는 것이 바른 순서라고 믿습니다. 그렇게 스스로 공부하다가 막힐 때 저에게 질문하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14. 제가 쓴 책으로 알려져 있는  부자아빠의 진실게임 은 동아일보의 이진 기자가 쓴 책입니다. 제가 이진 기자에게 주었던 원고가 일부 실려 있기는 하지만 책 내용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에 대한 이진 기자의 분석과 비평입니다. 하지만 출판사의 광고 및 표지에서 마치 제가 쓴 책인 듯 표시되어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15.언론에서는 제가 하고픈 말의 반도 못 썼습니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어느 곳에서인가 다시 독자들을 만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저는 조용히 여러분의 기억 속에서 다시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여러분은 제 글에 담긴 바늘들에 찔려 자그마한 깨달음이라도 얻었을 것입니다. 그 바늘들이 여러분의 생의 전환점이 되었기 만을 바랄 뿐 입니다. 
행운을 빕니다. 
세상이 원하는 기준에 맞추어 일하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라는 시  귀천 을 쓴 천상병 시인의 소원은 "내 집 하나만 있었으면" 이었다. 심지어 그는 "누가 나에게 집을 사주지 않겠는가  하늘을 우러러 목 터지게 외친다 고도 했다. 그러나 1993년 그가 삶을 마감한 곳은 "주인 말고도 세가구가 있는 집 이었고 열 네 사람이 몸을 부딪히며 살던 그런 곳이었다. 그래서 그는  가난은 내 직업 이라고 까지 했다. 왜 그는 가난했던가. 시를 좋아하였기에 시만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돈을 다루는 상과 대학을 다녔던 사람이다. 돈은 그의 아내가 찻집을 하여 벌었다고 하며 그 찻집은 2001년 현재 아직도 영업중이다. 
그가 가난하였던 이유는 무엇인가  시집이 잘 팔리지도 않는 이 땅에서 시를 썼기 때문 아닌가. 시인으로서 시만 쓴다면 대부분 가난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똑같은 시인이지만 많은 책들의 편자 혹은 역자로 등장하기도 하는 류시화는 내가 짐작하기에 전혀 가난한 시인이 아니다. 그는 보통 사람들이 무슨 글을 읽고 싶어하는지를 찾아 내 상품화 시키는 유능한 편집자이며 세상에서 대가를 얻어내는 마켓팅 기법도 아는 사람이다. 
당신이 시인이라면 천 시인처럼 살 것인지 류 시인처럼 살 것인지는 당신 스스로 결정할 사항이며 그 어느 쪽이 삶 자체로서 우월하다는 말은 그 누구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어느 직업을 가졌던지 간에 세상으로부터 더 많은 경제적 대가를 얻어내려면 그 대가를 결정하는 세상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세상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자기 최면에 빠져 살게 되면 돌아오는 것은 실패와 좌절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자들은 대부분 세상이 원하는 것은 무시하면서 실패의 책임과 원인을 세상에게로 돌린다. 세상이 불공평하다느니 세상이 썩었다느니 세상이 학벌이나 인맥 등으로만 이루어져 있다느니 등등, 실패한 자들의 핑계는 길고 긴 레파토리를 이룬다. 명심해라. 성공한 자들은 어떤 일이 잘못되면 그 책임과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다. 절대 세상 속에서 핑계를 찾지 않는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보자. 나는 자가용 기사를 한 두명 겪어 본 사람이 아니다. 연봉 2천만원을 주건 3천만원을 주건 간에 보통의 자가용 기사의 경우 "목적지까지 잘 모셔다 드리고 차량관리 잘하면 되었지 뭐가 더 필요해"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목적지까지 잘 모신다는 기준은 순전히 자기들 기준이며 차량 관리 수준 역시 자기들 판단에 근거한다. 
약 10수년 전 기사 한명을 새로 채용하였다. 그 시절에 나는 언제나 신경이 날카로웠다. 보통의 직원들은 사장에게서 야단을 맞으면 얼굴이 하루 종일 굳어 있는다. 하지만 그는 내가 별 것도 아닌 일에 불덩이 같이 화를 내었어도 5분 후에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사장님 약속 장소에 가실 시간입니다." 
그는 자신이 아는 길이어도 지도를 미리 보고 샛길들을 확인하였다. 그런 태도를 보고 "막히면 돌아가라"는 책을 사다 주었더니 그는 너무도 좋아하였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길이 막혀 차가 꼼짝 달싹 못하면 "이게 내 탓이냐 "는 태도를 보였지만 그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장님, 저 옆 골목으로 한번 가 보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물론 나는 언제나 찬성이었다. 
그는 오후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음에도 "오후에 비가 안 올 수도 있다"고 하면서 차를 닦아 놓았다. 그것도 완벽하게 닦아 놓았다. 대부분의 자가용 기사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는 내가 권하는 책들을 다 읽었고 심심하다고 기사 대기실에서 화투를 치지도 않았다. 우선은 차량을 최선을 다해 관리하였고 남은 시간에는 나이 어린 여직원들에게 도와 줄 일이 없느냐고 묻는 사람이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기 돈으로 차량정비 서적을 사서 공부하는 기사를 나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만난 적이 없다. 
1년 정도가 지난 후 나는 새로 기사를 구하고 대다수 임직원들의 상당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를 그 당시 연매출 400억원 대 회사의 영업부 과장직에 앉혔다. 반대가 극심하였던 이유는 내가 왜 그를 영업부 과장직에 앉히려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가 내게 아부를 잘해서 내가 그런 결정을 내린 것으로 오해하기도 하였지만 나는 그가 너희들하고는 일하는 근본 자세가 다르다는 말만 했을 뿐이다. 3개월 정도가 지나자 모든 거래처에서 그의 사람 됨됨이를 칭찬하는 말이 들려 왔다. 6개월 정도가 지나자 더 이상 회사 내에서 그의 자질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다시1년 후 그는 사표를 들고 나를 찾아 왔다. 돈을 어떻게 버는지를 알았다고 하면서 말이다. 나는 정말 기쁜 마음으로 그를 내보냈다. 몇 년 후 그가 업소용 김치 납품 공장을 아내와 함께 운영하고 있음을 들었다. 직원이 10여명 된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이 이야기에는 후기가 있다. 내가 그를 영업부 과장에 앉혔을 때 입사한 새 기사는 자기 선임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곧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자기에게도 그러한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대하면서 나에게 하는 모든 행동에 매우 신경을 씀은 물론 내 가족들에게도 아주 공손하게 처신하였다. 내게 종종 자신이 이미 예전에 영업활동을 한 경험이 있었음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선임자가 영업부 과장직에서 사표를 내자 그는 내게 계속 조르기 시작했다. 자신도 영업부에서 일하여 보고 싶노라고. 하도 귀찮게 조르기에 그를 영업부 평직원으로 보내면서 영업부 임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몇 개월만 데리고 있어라. 얼마 버티지 못할 테니까." 2개월 만에 그는 사표를 냈다. 
왜 나는 선임자처럼 행동하고자 애를 무지 쓴 그를 무시하였을까  세상이 원하는 자세로 일하는 태도는 뼈 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인식에서 나오는 것이며 눈 앞의 홍당무가 탐이 나서 나오게 되는 행동과는 그 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임자가 모범을 미쳐 보이지 못한 분야에서는 어떻게 행동을 하여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누수현상이 생기면서 탄로가 나기 마련이며 남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행동이기에 보는 사람이 없으면 그 본성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적토마는 홍당무가 없어도 잘 달린다고 내가 말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제 무슨 일을 하건 당신의 기준을 바꾸어라. 당신이 정한 기준으로는 절대로 부자가 되지 못한다. 부자들은 세상이 원하는 기준으로 일을 하여 온 사람들이다. 세상이 원하는 기준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고 넓고 깊다. 세상의 기준에 맞춰 일하라. 그래야 부자가 된다.( 그러나 나는 자기 기준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기준을 아무리, 아무리 귀가 따갑도록 설명하여도 못 알아 듣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경험적으로 안다. 그들은 오히려 "덜 먹고 덜 싸겠다", "꼭 그렇게 까지 하면서 바둥 바둥거리며 살아야 하느냐"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잘 살고 싶어한다. 그래서 얻게 된 결론: 역시 가난하게 살 사람들은 따로 있기 마련이다.)  
일의 대가는 질로 따져라   

수많은 사람들이 나는 받는 돈 만큼만 일할 것이며 그 돈은 내가 일한 시간과 비례하여야 한다 고 생각한다. 인터넷에서 샐러리맨들을 위한 사이트들 (www.payopen.co.kr , www.sman.co.kr , www.9to6.com , www.kimdaeri.co.kr , www.386party.com , www. coollife.co.kr , www.cybernojo.org 등- 2001년 현재)을 조금만 살펴보면 그런 사고방식을 당연하다고 믿는 사람들을 부지기수로 찾을 수 있다. 그들은 같은 직종의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똑같이 일한다고 믿기에 남들이 받는 보수에 대단히 민감하다. 같은 학교를 나왔으니 대우도 같아야 한다고 여기며 같은 자격증을 갖고 있으니 똑 같은 보수를 받아야 한다고 믿으면서 동일노동, 동일 임금을 금과옥조처럼 여긴다. 사람들 간의 질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산업화시대의 노동자들이 가졌던 생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아르바이트 학생들도 그렇다. 피자 헛을 들여와 한 때 엄청난 성공을 한 성신제는 "창업자금 칠만 이천원"에서 이렇게 말한다. "수많은 아르바이트 학생들을 써봤다. 이중에는 나는 유명한 디자이너가 될꺼야, 공인 회계사가 될꺼야 하면서 이까짓 아르바이트는 용돈벌이니까 대충 시간만 때우다 가자 라고 생각하면서 건성건성 일하는 학생들이 아주 많았다. 그들 중에서 단 한명의 디자이너,단 한명의 공인 회계사가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아르바이트로 접시 닦는 일을 하더라도 이에 미치는 사람이 본업에 돌아가서도 그 일에 미치고 결국은 성공하게 된다." 
나 역시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수많은 아르바이트 학생들 중에서 졸업 후 정식으로 채용을 하고 싶다고 사장이 말할만한 학생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대부분은 돈주머니를 가진 입장에서 볼 때는 언제라도 즉시 다른 사람으로 대체시킬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일만 한다. 받는 대가가 얼마이므로 그 이상을 하게 되면 손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바로 그런 생각이 가난으로 가는 고속도로임을 명심하라. 
스테이시 가델라는 대학 시절인 1994년 미국 애틀랜타 에모리대 부근에 있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였다. 그녀는 접시를 하나 닦더라도 물기 없이 깨끗이 닦아 가지런히 정리해 놓는 등 남다른 열정과 헌신을 보였다. 그 자세가 매장 지배인의 눈에 들어 졸업 후 정식 입사했고 불과 5년 만에 본사의 마켓팅 이사가 되었는데 미국외식업계 4위인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다. 업계에서 신데렐라로 불리는 가델라는 끈기(Persistence),헌신(Commitment),열정(Passion) 세 가지 원칙에 따라 이 세상을 살아간다고 하였다. 
1992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용인의 에버랜드에서 티켓을 파는 등등의 평범한 직원으로 입사한 이은예는 고객 서비스에 투철하였다. 한가지 일화가 있다. 93년 추운 겨울 어느날 저녁 무렵 4명의 가족 중 5살쯤 돼보이는 어린아이가 매우 발이 시려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눈썰매장을 이용하느라 옷은 물론 신발이 모두 젖었기 때문이었다. 이은예는 어린이를 직원휴게실로 안내해 발을 녹이게 하고 자신의 신발을 기꺼이 벗어 주었다. "주위에서는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소리를 듣긴 했죠. 하지만 가족이라면 추운데서 떨고 있는 그 아이를 그냥 두고보진 않았을 겁니다." 그녀는 입사후 1년만에 `베스트 서비스맨"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1호봉 특진혜택, 미소경진대회의 튜울립상, 역할연기 우수상, 삼성그룹의 품질 서비스 경진대회 회장상 등을 받았다. 그리고 입사 4년만에 서비스 아카데미 강사로 전격 발탁되었다( 그녀를 시기하고 미워하는 동료들이 하나 둘이었을까 ) 
톰 피터스(경영에 관심이 있다면 이 사람의 모든 책을 반드시 읽어라: 내가 나의 글에서 인용만 하고 읽으라는 말을 하지 않는 책들은 안 읽어도 되는 책들이라고 보면 된다)가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소개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리츠칼튼 호텔의 한 여자청소부 버지니아 아주엘라(Vrginia Azuela). 하지만 그의 책에서는 자세한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박태호 새너제이 주립대 경영학교수가 그녀를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한 뒤 98년 5월 12일 매일경제에 기고한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필리핀 출신의 그녀는 74년 당시 27세에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왔다. 고등학교 졸업의 학력으로 선택 가능한 직업은 호텔의 청소부였고 91년 리츠칼튼에 입사하면서 총괄품질경영에 관한 교육을 받았다. 대다수 동료들은 청소라는 허드렛일에 무슨 품질경영이냐고 비웃었으나 그녀는 달랐다. 그녀는 작은 메모수첩에 그녀가 서비스한 객실 고객들에 대한 특성과 습관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그 고객이 다시 왔을 때 그들이 원하는 객실서비스를 하였다. 
심지어 침대보 작업까지 개선시켰다. 본래 호텔측에서는 침대보 교체작업을 과학적으로 연구 분석하여 2인1조의 작업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녀는 새 침대보를 침대 사이즈에 맞춰 침대보를 까는 순서의 역순으로 접어두면 작업속도를 더 높일 수 있음을 알아냈던 것이다. 그녀는 고객만족과 관련된 문제해결에는 2,000달러를 임의로 쓸 수 있는 재량권을 부여 받았고 호텔직원에게 주어지는 가장 영예로운 파이브 스타(Five Star)상은 물론 말콤 볼드리지 생산성 대상까지 받았다. 
6.25 동란 당시 고아가 되어 구두를 닦다가 열입곱 나이에 미군 부대에서 세탁 같은 허드레 일을 하던 이 철호. 그는 미군들이 맡긴 옷가지들에서 때가 잘 빠지지 않으면 삶아 빨았다.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포격으로 파편을 맞아 그 수술 때문에 여차여차 노르웨이에서 살게 된 그는 배가 너무 고파 요리사가 되고자 하였고 주방에서 그릇 하나를 닦아도 정성을 다하였다. 그에게 2-3년씩 감자만 깎는 일이 주어졌을 때 그는 요리의 종류에 따라 골라 쓸 수 있도록 여러 모양으로 깎아 놓았다. 그는 현재 노르웨이 라면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백만장자이다(이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성공시대 프로그램을 MBC인터넷사이트에서 반드시 찾아서 보라. 책으로도 나온 것으로 안다.) 내 경험 하나를 이야기 하자. 미군 부대에 있는 대학을 다녔을 때 먹고 살고자 부대에서 흘러 나오는 화장품이나 식료품들을 가방에 넣어 갖고 다니며 부유층 아파트들을 돌아 다니며 팔았던 적이 있다. 대부분 그런 물건들은 아줌마들이 팔았고 나 같은 남자 대학생은 전혀 없었기에 경비실을 통과하기도 만만하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한번이라도 문을 열어 준 고객들에게 나는 정말 최선을 다 하였다. 우선 나는 모든 상품에 붙어있는 영문 라벨들을 사전을 찾아가며 모조리 외웠다. 바셀린 연고 하나를 팔더라도 눈 화장을 지울 때 사용하면 좋다는 내용도 잊지 않고 알려 주었다. 그리고 눈 화장을 지울 때는 큐팁(면봉의 미국 상품명)을 사용하라고 하였고 큐팁도 팔았다. 스팸 햄을 팔 때는 새로운 요리법들도 알려 주었다. 
결국 한 명의 고객을 만나게 되면 얼마 후 그 고객이 다른 고객을 소개하여 주었는데 정말 그 숫자가 기하급수로 늘어났으며 사전 주문도 생겨 났다. 그 당시 내가 알게 된 원칙 몇 개; 남들이 하지 않는 서비스를 제공할 것, 절대 오늘의 이득에 눈이 멀면 안 된다는 것, 부자들은 끼리끼리 산다는 것, 한명의 고객으로부터 신뢰를 받게 되면 시간은 좀 걸리지만 그 주변의 모든 부자들도 언젠가는 내 고객이 된다는 것. 내가 나중에 누구까지 만나게 되었는지 아는가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당시 최고의 연예인 몇몇 까지 내 고객이었다. (나는 이 일을 몇 년 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해 그 일은 관세법 위반으로 단속 대상이었기에 께름칙하였을 뿐 아니라 압구정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것과 번역을 하는 것이 더 많은 수입을 챙길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자기 몸값은 그렇게 높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막노동을 하여도 최선을 다해 제대로 해라. 당신이 일한 대가에 대한 법칙 두 개가 있다. 
첫째 당신이 먼저 보여주지 않는 한 국물도 없다. 대가를 더 많이 받는다면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이 세상은, 당신이 열심히 성실히 일하겠다는 그 각오를 덥석 먼저 믿어 주는 세상이 전혀 아니다. 적토마는 홍당무가 없어도 잘 달린다. 홍당무가 적다고 징징거리는 말들 치고 제대로 달리는 놈이 없다. 사람은 말이 아니라고  돈 몇 푼 벌겠다고 스테이시 가델라, 이은예, 버지니아 아주엘라, 이철호가 했던 것처럼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도대체 있느냐고  무슨 햄 쪼가리 하나 팔면서 요리법까지 알려 주느냐고  그냥 편하게 일하고 조금 벌겠다고  뭐 그렇게 아둥바둥 살 필요가 있겠느냐고  좋다. 그렇다면 당신 생각대로 그냥 계속 살아라. 아무도 안 말린다. 단 조건이 있다. 절대로 부자들을 부러워 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당신은 평생 가난하게 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하여간에 가난한 자들에게는 공통된 유전자가 있다.) 
둘째, 보상의 수레바퀴는 언제나 처음에는 천천히 돈다. 가속도가 붙기 까지 에는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겨우 몇 개월 열심히 하여 보고 대가가 즉시 주어지지 않으면 실망하여 곧 "일하는 본성"을 드러낸다. 나는 이런 얄팍한 태도를 가진 사람들을 한 두 번 본 것이 아니다. 며칠 밤을 새워 일을 하게 되면 자신의 월급이 그 다음 달로 인상되기를 바라는 이 조루증 환자들아. 세상은 이미 당신 같은 사람들에게 한 두 번 속아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당신을 믿어 주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라. 신의 경륜의 수레바퀴도 천천히 도는 법 아닌가. 
다 자란 한우 한마리의 가격은 300만원선이다. 그러나 건강하고 질병 없는 우수한 종자를 뭇 암소들에게 나눠주는 종우(種牛)는 최고 3억원 까지 한다. 사람도 몸값이 비싼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사람을 어떻게 짐승과 비교하느냐고  나는 소를 소와 비교하는 것이고 사람을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고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고  그것을 믿는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말은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말일 뿐이며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희망의 표현일 뿐이다. 사람이 모두 평등한 경우는 생노병사와 신 앞에서 뿐이다. 내 말이 여전히 귀에 거슬린다면 사람은 모두 평등하지만 그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일의 결과들은 절대 평등하지 않다고 말하면 어떨까. 모든 중국 음식점의 주방장들이 평등한 인간이라고 해서 그들이 만드는 짜장면의 맛과 가격이 똑 같은 것은 아니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당신도 맛없는 짜장면 보다는 맛있는 짜장면을 더 좋아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동일노동,동일임금   좋~아 하시네;비꼬는 말투로 읽어야 함.  ) 
자. 이제 몇 시간을 일하고 얼마를 받는지는 잊어버려라. 일의 질적인 결과에만 관심을 두어라. 몇 년 후에 받게 될 대우에 걸 맞는 일 솜씨를 지금 먼저 보여주어라. 부자가 아니라면 가진 것은 몸과 시간 밖에 더 있겠는가. 그것들을 바쳐 일의 질을 높여라. 
그렇지만 직장생활을 하면 부자가 되지 못한다고  아니다. "직장에서 일을 잘하지 못하면 직장 밖으로 나가도 부자가 되지 못한다"고 해야 한다. 일을 못하면 직장 밖으로 나가도 절대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직장생활을 잘하여야 부자가 될 수 있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직장생활 자체가 아니라 일이다.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직장을 그만두고 사회로 나와도 일 잘한다는 평가를 받게 되므로 대가를 더 받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투여한 시간과 노력에 비해 대가가 충분치 않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기다려라. 곧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찾을 것이며 당신의 몸값은 저절로 높아지게 되어있다. 그 몸값이 부자가 될 수 있는 투자의 종자돈이 된다. 동료들의 야유와 시기가 부담스러워지기도 할 것이다. 콩쥐를 시기하는 팥쥐는 언제나 있는 법이므로 철저하게 무시하라. 적어도 5년 후에는 그들과는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의 사항; 1.당신이 아무리 열심히 일하여도 대가를 더 받기 힘든 일들이 있음을 명심하라. 2. 일하는 능력 보다는 아부가 더 우선인 집단들도 많다( 규모가 크고 안정적으로 보이고 좋게 보이는 곳들인 경우가 많다). 
돈 갖고 사람을 차별하면 안된다고    
  
은행에 가면 여러 가지 안내장이 붙어 있다. 평균 잔고 얼마 이하는 이자를 주지 않겠다, 창구에서 공과금을 받지 않겠다, 동전을 교환해주지 않겠다, 등의 내용이다. 반면에 거액 이용자들을 위해서는 프라이빗 뱅킹(PB) 코너라는 것을 만들고 극진한 정성을 쏟는다. 은행의 이런 움직임에 대한 이용자들의 불만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어떤 기업이든 돈만 쫓는 기업은 고객의 외면을 당한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은행의 공과금 수납은 사회봉사 차원에서 계속되어야 한다. 은행들의 거만한 태도를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을지 답답하다. 정말 은행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고액 예치자들에 대한 은행의 우대를 보면 자존심이 상한다.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고급 인테리어에 대형 화분, 1 대 1 데스크 등 일반창구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PB코너는 은행의 주고객인 일반 직장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점심시간에 직원이 식사 중이라 소수인원만 근무할 때 고객들이 밀려들어 대기하는 동안 PB코너는 한산해 파리 날리며 VIP를 기다린다. 돈 없다는 이유만으로 일반 고객들이 홀대 받는 것 같아 씁쓸하다…이러쿵저러쿵. 
어느 경제지 기자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쓰기도 했다. 
VIP고객들은 송금 액수와 상관없이 수수료가 면제된다. 부자도 아니고 인터넷 사용도 못하는 그야말로 서민들은 100만원 넘는 돈을 다른 은행에 보내려면 4,000원을 내야 한다. 부자고객에게 각종 무료 서비스와 선물을 제공하는 데 따른 손실을 서민들에게서 번 돈으로 보전하는 셈이다 
나는 은행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은행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들도 당신처럼 제한된 시간과 제한된 인력으로 돈 벌고자 애쓰는 사람들일 뿐이다. 은행이 거만하다고  돈 많이 벌어주는 고객들에게는 친절하다. 당신도 당신에게 이익을 많이 주는 손님에게는 그럴 것이다. 정말 은행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은행은 자원봉사단체가 아니다. 당신이 식당을 한다면 굶주린 사람들을 모두 먹이겠다는 말이냐. PB 코너가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고  홀대 받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당신은 지금  돈 갖고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된다 고 믿는 것이며  인간은 돈 앞에서 평등하다 고 생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말이다. 정말 골 때린다. 게다가 부자에게 무료 제공하는 서비스가 서민들에게서 번 돈으로 충당된다고  정말 웃긴다. 그 서비스는 부자들로 인해 벌게 된 돈으로 제공되는 것이다. 
당신이 저녁에 술을 파는데 단골손님이 와서 양주 몇 병과 안주 몇 개를 시켰다. 다른 손님은 맥주 몇 병에 팝콘 안주 뿐이다. 당신 같으면 누구에게 신경을 더 쓰겠는가. 물론 장사건 사업이건 친절이 기본이다. 은행이 참으로 미숙한 것은 거절하는데 있어서도 미소를 가득 띄어야 한다는 것을 모른다는 점이다. (일본 선술집에서 저녁에 밥을 시키면 얼굴 가득히 미소를 띄우면서  찬밥밖에 없는데 찬밥을 드릴 수는 없다 는 식으로 말하는데 속내는  술집에 왔으면 술하고 안주를 먹어야지 바빠 죽겠는데 왜 돈도 얼마 남지 않는 밥을 시키느냐 는 뜻이다.) 
공연장에서 무대가 잘 보이고 음향도 좋은 자리는 당연히 비싸다. 유독 한국에서는 불이 꺼지고 공연이 막 시작되려고 하면 재빨리 자기가 산 좌석보다 더 비싼 빈 좌석으로 옮기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나는 예전에 우리나라 비행기에서 일등석이나 이등석 좌석에 미친 척하고 앉아 있는 3등석 손님들도 보았다. 승무원이 자리를 옮겨 줄 것을 요구하면 얼굴이 벌개져서 자리를 옮기는 사람도 있지만  비어 있는 좌석인데 좀 앉아 간다고 무슨 일 생기는 것도 아니지 않소. 그냥 앉아 갑시다 고 오히려 큰소리치는 사람들도 있다. 
디즈니랜드에서 디즈니가 직영하는 호텔에 투숙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입장을 1시간 이상 빨리 허용한다. 돈 갖고 사람을 차별한다는 말이다. 내가 만일 용인 애버랜드의 사장이라면 1등석 입장권을 매우 비싼 값에 별도로 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줄서기에서 1등석 입장객과 일반 입장객을 구분할 것이다. 런던 국제공항에는 1등석 승객을 위한 별도의 출입구 까지 준비되어 있다. 파리에서도 뉴욕행 콩고드 비행기 승객들은 출발 이전부터 완전히 분리된 대우를 받았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9.11 테러 이후 미국 공항에서도 1등석 승객은 검색대에서 우선권을 부여 받는다. 이게 자본주의다. 스키장에서도 회원들이 이용하는 리프트와 비회원 리프트는 구분되어 있지 않은가. 비회원이 비회원 전용 리프트를 타려고 길게 늘어 서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아니 나 같으면, 줄이고 나발이고 없이 그냥  원하시는 시간에 조금도 기다림 없이 타실 수 있으며 24시간 전담 요원이 따라 다니는 초특급 회원권 을 가입비 10억원에 연회비 1억원 정도에 팔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같은 인간인데 줄까지 차별하다니 너무 한다 ,  돈 없다고 괄시하니 서러워 못살겠네  따위의 생각을 한다면 당신은 평생 부자로는 살지 못할 것이다. 나는 찢어지게 가난하였을 때도 그런 생각을 전혀 해 본적이 없는데 왜 당신은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자본주의에서 돈을 지불하는 대상은 결국  좀 더 편하고 좋은 것 을 얻기 위함이다. 당연히 그 질적인 면은 지불하는 돈의 크기와 비례할 수 밖에 없다. 
백화점에서도 구매실적이 저조하면 차별을 감수해야 한다. 우수고객들은 바겐세일 기간이 아니더라도 특정품목을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다. 대다수 일반 고객들은 어떤 행사가 진행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연평균 5000만원 이상 쓰는 특별고객을 위한 VIP 전용 휴게실은 당연히 일반 고객들은 출입 금지 공간이다. 
해외 여행을 하다 보면 나라별로 호텔요금의 계산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방값만 내면 투숙하는 인원 수는 상관 없는 경우도 많지만 같은 방이면서도 그 인원 수에 따라 방값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고 함께 투숙하는 자녀의 나이와 자녀 수를 제한하는 나라도 있다. 택시 요금 역시 짐을 얼마를 갖고 타든지 간에 미터 요금만 내면 되는 한국 같은 나라도 있고 홍콩처럼 가방 숫자에 따라 추가요금을 내야 하는 곳들도 있으며 심지어 승객의 숫자에 따라 추가요금을 내야 하는 나라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식당 요금 역시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서는 좌석 위치에 따라 요금이 다르기도 하고(파리에서는 길가에 놓인 좌석이 비싸다) 음식을 싸 갖고 갈 경우에는 앉아서 먹는 요금 보다 할인이 되는 나라들도 꽤 있다. 서울의 몇몇 특급 호텔들에서는 도시락을 주문하여 가져 갈 경우 10%의 봉사료를 붙이지 않는다. 이게 자본주의에서의 합리성이다. 
그래도 호텔에서 도어맨이 고급차를 우대시하는 것은 너무 하지 않느냐고  알려면 제대로 알아라. 고급차이어서 우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주 오니까 우대하는 것이다. 나 부터만 하더라도 몇몇 호텔들에서는 도어맨들이 내 얼굴과 차를 기억한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조선 호텔이나 신라 호텔 같은 곳에 어쩌다 가게 되었을 때 내 차가 좋다고 해서 특별 대우를 받았던 경험은 전혀 없다. 내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 소형차를 타고 호텔에 들락날락하면서 발리 (valet) 파킹을 부탁하여 보아라. 한 두 달도 안되서 도어맨들이 알아서 모실 것이다. 특급호텔 앞에 고급차들만 주차하여 있는 이유는 발리 파킹 비용을 내거나 팁을 주기 때문이지 차가 좋아서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수고객에게는 특별 대접을 하고 불성실한 고객과는 의도적으로 거래를 줄이는 디마케팅(demarketing)은 당연한 현상이다. 부자 마케팅의 이면에는 부자고객에게 많은 혜택을 주기 위해 상대적으로 서민 고객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는 차별적 구조가 감춰져 있다고  아니 무슨 불이익  자본주의 사회의 원리는 이렇다. 더 편하고 더 좋은 것을 원한다면 대가를 지불하라. 지불할 돈이 없다고  그렇다면 덜 편하고 덜 좋은 것을 가지면 된다. 그게 불이익이냐  입석과 좌석의 차이가 없이 먼저 뛰어가 타는 놈이 앉아 간다는 원칙이 통용되는 곳은 절대로 좋은 사회가 아니다. 
하지만 어쩌면 당신은 그런 시스템을 "돈 앞에서 평등한 사회"로 믿을지 모른다. 기억해라. 그런 사회는 공산주의가 만들어 낸 허상일 뿐이다. 정말 좋은 사회는 "대가를 많이 지불한 사람들"과 "이 사회에서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인하여 기회를 균등하게 부여 받을 수 없는" 장애인들이 먼저 앉는 사회이다(은행에서도 장애인들 만큼은 특별 대우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족; 우리나라 항공사 직원들 중 탑승구 앞에서 표를 받는 직원들은 돈을 더 낸 승객들에 대한 차별적 서비스 제공에 아주 아주 둔감하고 미련하다. 탑승 순서에 대한 방송을 마이크 없이 하는 직원들도 많고 방송 멘트 역시 탑승 대기 줄은 하나이므로 1등석이나 비즈니스석 손님들은 아무때나 줄을 새치기하고 들어오면 된다는 식으로 말한다. 심지어 그런 멘트 조차도 안 하는 닭대가리들도 부지기수이다. 도대체 일본 나리타 공항처럼 탑승로를 둘로 칼같이 나누어 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 내가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항공의 오우너였다면 아마도 사장부터 재교육을 시켰을 것이다. 미국의 어느 항공사 직원 휴게실에서 내가 본 글 "잊지마라, 우리들 월급의 절반은 일등석과 비지니스석 손님들이 제공한다 .) 
공지 + 나는 무소유의 삶은 살지 못한다  
..  금년 초부터 이 카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려는 사람들에 대하여 모르는 척 하기가 좀 미안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이곳에 올리는 글들의 상당수는 예전에 신문이나 잡지 등에 실렸던 글들의 오리지널 원고를 약간 손을 본 뒤 올리는 것이지만 일부는 내가 근 20여년을 써 놓았던 조각 원고들을 시간 나는 대로 정리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천재가 아니어서 즉흥적으로는 글을 쓰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이곳에 올린 글들을  세이노가 하룻 밤에 쓴 글 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모든 글에는 내가 살아 온 세월이 담겨 있음을 잊지 말라. 
하지만, 독자들이 어떤 특정 주제에 대하여 질문을 많이 하지만 그 주제에 대하여 
내가 과거에 써 놓았던 원고가 없을 때, 새로 써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 미루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경우 앞으로 짧게나마 나의 생각을 올리려고 하는데 말머리에 () 표시를 별도로 붙일 것이며 많은 독자들이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는 내용에 대한 답변이 될 것이다. 

Posted by 인생&조이